아이의 전화를 받고 쓰다
- 시린 선생님 번호 맞나요?
- 맞는데,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 저는 1학기 때 수업 들었던 이아름(가명)입니다.
앳된 게 아니라 그냥 어린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웬만하면 무시하는 낯선 발신번호 전화를 망설이지도 않고 받았을 땐 뭔가를 예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 잘 지내요. 근데 그냥 그래요. 선생님이 없어서 재미 없어요.
어떻게 지내냐, 학교는 어떠냐 물으니 또랑또랑 요망지게도 대답한다. 미리 준비라도 해 뒀나 싶을 정도. 이제 1학년인데 예닐곱 살의 아이가 맞나 싶어 혹시 다른 학교의 다른 아이와 착각했나 더듬어보기도 했다.
수업을 끝낼 땐 번호와 메일주소를 알려주며 언제든 연학해도 좋다고 하지만(아이인 경우에는 미리 허락을 받는다.) 어른 아이 없이 연락처를 저장하는 이도 드물거니와 실제로 연락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여기저기 떠돌며 수십 명을, 겨우 몇 시간 만나는 게 고작이라 이름조차 외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니 막상 연락이 온대도 누군지 기억 못 하거나 어색하기만 할 때도 있다.
한데 이 아이, 아름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이 떠올랐다. 이 또한 아이의 기운일 텐데, 도드라지게 밝고 요망진 아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간간이 아름이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던 건 사실 아름이의 짝인 연우 때문이다.
연우는 내가 내심 치료가 필요하다 생각했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아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였다. 바닥에 드러누워 장난감을 조르는 아이처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울며불며 떼를 쓰는 거다.
담임교사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교사는 반에서 가장 야무진 아이를 짝으로 붙였다. 선생님이 없을 때 연우를 살피고 일이 있을 땐 얼른 알려달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연우를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는 건 아름이 뿐이었다.
하나 그래봤자 아주 조금, 잠깐 달래질 뿐. 연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또 바닥을 뒹굴곤 했다. 아이들은 연우가 울기 시작하면 아름아, 아름아! 하고 선생님보다 아름이를 먼저 찾았다.
아름이는 웃음을 퍼뜨리는 재주가 탁월한 아이였다. 특유의 밝은 웃음과 동작으로 울던 연우마저 웃기곤 하던 아이가 딱 한 번, 우는 연우를 버려두고 내게 오더니 말했다.
- 저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아무도 못 들을 때 딱 한 마디, 늘 그랬듯 해맑게 웃으며 또랑또랑 말하곤 얼른 연우에게 돌아갔다.
- 선생님, 제 번호 저장해둬요.
아름이의 명령에 그러마 하고, 끊었다 전화를 걸어 확인도 시켜 주었다. 또 통화하자고 했다.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테다. 몇 마디 말로 아이의 짐을 한순간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