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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괜찮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하는 연습

by 새벽당직일기

의사 국가고시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실기시험이 있었다.
CPX(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 임상수행평가)고 하며,
시뮬레이션 방 안에서 가상 환자를 연기하는 배우 앞에 앉아,
질병의 진단과 예후를 설명하며 평가를 받는다.
정확한 정보 전달, 공감, 치료 계획 수립 능력까지.
눈빛과 말투, 침묵의 길이까지 점수화된다.

나는 그 시험을 잘 통과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험’이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대사, 정해진 감정의 흐름.
현실에선, 설명이 끝난 뒤부터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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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초반, 나는 차가웠다.
“간 수치가 이렇고, 종양의 위치가 이렇고, 5년 생존율은 평균 20% 이하입니다.”
의학적 사실을 빠짐없이, 정확히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환자의 표정이 굳는 것도, 고개를 떨구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진실을 말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환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며, 병실에서 사라져버리는 보호자.
그런 이들의 뒷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남았다.

실제로, 내가 했던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렸는지,
설명 다음 날 퇴원을 결정한 환자도 있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겠습니다."
그는 남아 있는 치료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말이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포기하게는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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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폐암으로 진단받은 중년 남성 환자에게
뇌 전이 소견이 나왔다는 사실을 설명하게 되었다.

“이번 뇌 MRI에서, 암이 전이된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그 말은 내가 가장 익숙하게 말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는 침묵했다.
내가 설명을 이어가려 하자 손을 들었다.

“그럼, 이제 방법이 없는 건가요?”

그 질문에, 나는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약이 듣는 환자도 있고, 증상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쉽지 않겠지만,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견뎌냈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냈다.
그 선택이 준 시간의 무게를,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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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알아간다.
환자는 진실보다 희망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희망이 있어야, 진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이 병은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던 나의 말은
“아직 해볼 수 있는 게 있습니다.”로 바뀌었다.
나는 이제 설명자가 아니라,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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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이 말이, 이 환자에게 어떤 하루를 만들까?
그래서 나의 말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치료의 여지는 있습니다.”
“이 병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언어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제, 환자가 하루를 더 살아낼 수 있는 말을 고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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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예후를 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은 마음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직 괜찮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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