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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계절

산문

by 잎차

어떤 계절은 끊임없이 울기만 한다. 그런 계절은 슬픔에 잠겨, 죽지도 못한체 허공을 맴돈다. 봄은 그런 계절을 몇 알았다. 제각기 서러운 계절들이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몇몇 계절들이 울기 시작했다. 하나의 계절이 울기 시작하면 늘 다른 계절이 따라 울어 이내 방 안 모든 계절이 울었다. 비 오는 날이면 유독 소다맛 울음들이 많았고 그런 울음을 들을때면 봄은 소리가 기도를 꽉 매운다고 느꼈다. 계절의 울음은 늘 음성보다는 부피로, 음량보다는 질감으로 다가왔다. 방 안을 가득 매워 쏟아져 내리는 울음. 그 울음이 버거워 계절 몇을 창 밖으로 내보내도 이내 계절은 언제 나갔냐는 듯 다시 방 안에 자리잡고는 했다. 봄은 그런 계절과 사는 법을 익혀야 했다. 끝없이 우는 계절과 사는 법을.


계절이 울어 봄은 울지 않았다. 울지 않아도 되었다. 봄의 모든 슬픔과 절망과, 슬픔과 절망과, 슬픔과, 그 모든 감정, 그 모든 것들은, 계절이 가져갔다. 계절은 봄의 감정을 먹으며 자랐고, 자란 만큼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때로는 레몬맛이었고, 때로는 블루베리를 닮았고, 때로는 금속맛이었다. 봄은 계절이 자라지 않기를 바랐고 울지 않기를 바랐다. 저를 짓누르며 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무지 감정을 갈무리 하지 못하여. 봄의 감정을 먹고 계절이 자란다. 봄을 죽일 계절이다.


간혹 울지 않는 계절이 나타나고는 한다. 그런 계절은 우는 대신 가만히 놓여만 있는다. 가만히, 제 존재 이유를 찾듯이, 마침내 제가 존재할 필요가 없었음을 알아냈듯이, 제가 쓸모 없음을 필요치 않음을 용도조차 불분명한체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듯이. 그런 계절은 한참을 조용히 있다 마침내 아주 작은, 울음같은 숨소리를 딱 한 번 내고는 사라진다. 봄은 그런 계절을 몇 알았다. 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적은 수의 계절이었다. 다른 계절들이 대신 울어주는 그런 계절이었다.


계절이 자라 봄의 자리를 뻇는다. 좁은 방안, 작은 구석. 봄은 부풀어 오르는 계절들을 바라본다. 마침내 울음을 참기 시작하며 터질듯 팽창하는 계절이다. 봄은 곧 계절이 터질 것을 알았고, 계절이 터지며 튀어나온 액체를 제가 뒤집어 쓸 것을 알았고, 그 액체에 제가 익사할 것을 알았다. 연기같은 액체가 제 숨을 앗을 것을 알았다. 하여 봄은 계절을 안아주었다. 간혹 있는 죽음이었다.


봄은 계절과 함께라도 살기를 바랐으나 어떤 공존은 영원히 불가능 한 것이라 그 계절들 틈에서 봄은 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모든 봄비 오는 날은 봄의 기일이며 비 그친 아침은 봄의 생일이다.


한없이 우는 계절 사이, 봄은 사라질 목소리로 그이름을 불러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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