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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by 어니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6년간 임신, 출산, 육아를 했다. 게다가 학교를 다닌다고 하루 중 긴 시간을 앉아 있는 생활을 해왔다. 목, 어깨, 허리에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위장 장애가 있었고 순환이 안 돼 수족냉증이 심했다. 출산을 수술로 한 내가 그렇게 앉아있기만 한 것은 알고 보니 복부 순환에 최악인 생활방식이었다. 작년 말 석사 논문을 마무리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오랜만에 운동을 시작했다. 생전 안 해 본 근력 운동을 시작하면서 트레이너 선생님은 내 몸에 근육이 그냥 전원이 꺼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하셨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갓 태어난 기린 소리를 들어가며 운동을 배운 네 달 동안 점차 들 수 있는 무게가 늘어가고 플랭크와 푸시업, 윗몸일으키기 실력이 늘어갔다.


무게를 들 때 자주 어지러워하는 나에게 트레이너 선생님은 호흡과 심폐지구력이 달리는 문제라고 하면서 러닝을 권해주셨다. 피티 팀원들과 처음 뛰러 나간 날, 공원 한 바퀴인 3킬로를 달렸는데 첫 500미터도 채 뛰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리고 걸었다. 한 바퀴를 돌고서 남들은 가뿐한데 나만 숨이 딸려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 뒤로 피티가 없는 날에 격일로 뛰러 나갔다. 같이 뛰어주는 사람이 없을 땐 아무래도 한계를 넘는 달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꾸준히 쉬지 않고 하려고 했다. 혼자서 나가서 꼬박꼬박 뛰는 날 보고 사람들은 ‘모범생과‘라고 했다. 맞다. 나는 하기로 한 것을 그만두는 것을 어쩌면 굉장히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융통성 없는 과다.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트레이너 선생님이 마라톤에 같이 나가자고 했다. 또 무슨 권유든 잘 거절 못하는 나는 덜컥 10킬로를 신청하고, 그날이 무서워서 또 열심히 뛰었다. 준영에게도 같이 나가자고 꼬셔서 두 명 대회비를 입금했다. 몇 년 전 러닝을 취미로 혼자 했던 준영이 얼마나 잘 뛰나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두 달 전까진 혼자 연습하다가 한 달 전부터는 주말에 팀원들과 모여서 한 시간 뛰기를 해보고, 평일에 선생님과 같이 3킬로 거리 공원을 세 바퀴 뛰기도 해 봤다. 같이 뛰면 나에게 뛸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된다. 심폐 능력을 늘리기 위해 하는 러닝에 또 결국 근력이 필요하다. 잘 뛰려면 근력운동을 더 잘해야 했다. 거리를 늘려 여러 번 뛰어보면서 어떨 때 몸 컨디션이 좋은지, 어떻게 뛰어야 무릎이 덜 아픈지도 경험적으로 배워간다.


8.5킬로까지 뛰어보고서 마라톤 10킬로에 출전했다. 이렇게나 뛰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놀랐고, 또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복장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의외였다. 또 겁먹고 졸아있는 것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축제 분위기에서 시작한 후 빠른 속도로 출발해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페이스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같이 뛰어주겠다고 했던 준영이 막 앞서 나갔다가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그냥 뛰고 싶은 대로 뛰라고 했다. 그러자 신나게 뛰어나가는 그. 심지어 그냥 청바지 입고 나온, 딱 봐도 평소에 뛰는 게 아닌 것 같은 러너조차 나보다 빨랐다. 나보다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나보다 준비 없이 나온 것 같은 사람들도 나보다 잘 뛰었다. 그래도 그동안 뛰면서 연습한 것만 기억하려고 하면서 평소 페이스대로 뛰었다.


5킬로까지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반대편 차로에 반환점 찍고 달려오는 사람들 얼굴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개나리, 새싹 돋은 나무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주변을 구경하면서 그냥 다리를 굴리듯이 한동안 뛰었다. 아직 내가 앞지르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10킬로 주자들 중 후반 그룹인 것을 알았다. 반환점을 찍고 급수하기 위해 잠시 걸은 뒤에 다시 뛸 때쯤, 옆 차선을 비우기 위해 오토바이 두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잠시 뒤 한 6킬로 지점부터 뒤에서 마치 톰슨가젤 달려오는 것처럼 바람을 가르면서 턱, 턱, 하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프 주자들이 반환점을 지나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힘들어서 겨우 종종종 뛰고 있는 나와는 보폭도 속도도 자세도 완전 다른 달리기였다.


앞을 바라보며 달리는 내내 내 앞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후반부에서는 몇 사람 눈으로 붙잡고 앞지르면서 뛰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초보 러너인 내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달리기의 목표나 의미는 그들을 따라잡는 것이 될 수 없다. 내가 뛰는 의미는 내 감각에 충실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여러 번 뛰어면서 익혔던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무릎이 아프지 않기 위해 뒤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종아리를 좀 더 들어 올리기 위해 온 정신을 쏟았다. 자꾸 앞으로 쏟아지는 상체를 좀 더 들어 정면을 향하려 애쓰고, 팔을 뒤로 당겨 추진력을 얻어보려 했다. 그리고 최대한 걷지 않으려고 마음을 계속 가다듬었다.


앞으로도 내 앞에는 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출발했든, 나보다 오래 뛰어왔든, 나보다 타고난 체력이 좋았든, 나보다 연습량이 많았든지 간에 같이 길 위에 선 이 사람들은 각각 자기만의 달리기를 한다. 이 달리기는 내게 그런 것을 깨닫게 한다. 앞에 선 사람에게 오래 시선을 주는 것은 내 달리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내 앞에 선, 그리고 내 뒤에 따르는 누군가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서로 ‘파이팅!!’하며 격려하기 위함이지 나와 비교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내가 뛰는 이유는 끝까지 다 뛰기 위함이지, 누구를 제치기 위함이 아니라고. 적어도, 내 앞에 많은 이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멈출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뛰면서 눈에 들어왔던 이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뛰는 부모들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1학년 정도되는 아이와 손 잡고 뛰며, 걸으며 마라톤에 참여했다. 어떤 여자 아이는 5킬로 코스 반환점에도 못 가 울기도 하는 모습도 봤고, 어떤 남자아이는 10킬로 코스 반환점을 지나서도 아빠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결승점을 앞두고서 이런 대화도 들려왔다. ‘여기까지 달린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달리는 것 보면 너는 뭐든지 이룰 수 있다’ 같은 부모의 따스한 격려들. 아이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가족 또는 친구의 손을 잡고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의 뛰는 의미는 심지어 자기 기록을 경신하는 것에도 있지 않다. 그저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10킬로 뛸 수 있음에도 5킬로에 도전하고, 달릴 수 있음에도 아이 손을 잡고 걷는다. 이 시간이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지게 하기 위해.


내 앞에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있다고 멈춰 서고 싶어 하거나 아예 가지 않으려고 했던 숱한 날들이 떠오른다. 막상 마라톤 길에 올라보니, 길이 길면 길수록 앞에 누군가 있다고 멈추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달리는 이유는 그 자신에게 있다. 중간중간 앞지르기도 하고, 앞지름을 당하기도 하고, 엘리트 러너들에게는 한 두 명 제치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기도 하지만, 그게 달리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달리는 의미는 달리면서 찾아진다. 달리면서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아가듯이, 달리는 이유와 목표도 달리면서 가장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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