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Aug 06. 2021

파고들다


어릴 때부터 그의 손톱은 그를 악랄하게 괴롭혔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톱이 마구잡이로 먹이를 쫓는 굶주린 늑대처럼 옆으로 파고드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톱은 더욱 당당하게 그에게 상처를 내었다.

베인 상처에는 피가 고였고, 피가 오래 고인 자리에는 누런 고름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 끝은 언제나 퉁퉁 부어 있었다. 불에 덴 듯 쉴 새 없이 화끈거렸다.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 보고, 약을 처방받고, 손톱 관리까지 받아보았다.

하지만 손톱은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보다 심하게 쑤셔 들어왔다.

자신의 손톱을 매일 원망하며 지내오던 그는, 어느 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엉망진창인 그의 손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손톱이 옆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예쁘게 손톱을 깎아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깎은 손톱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고 얌전히 자라나 주었다.

그도 그녀가 손톱을 깎는 방법을 따라 해 보았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녀는 걱정 말라며, 앞으로 손톱이 길어지면 자신이 모두 깎아주겠다 약속했다.

그렇게 그는 악성 손톱과의 싸움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화끈거리지 않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남들과 같이 편안한 손에 익숙해질 때 즈음,

모든 스쳐가는 인연이 그렇듯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손톱은 이 시기를 틈타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욕구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전보다 배로 고통스러웠다. 손가락을 끊어내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가 돌아와 주기를 바랬다.

손톱을 깎아 주겠단 약속 따위는 지켜지지 않았다.

원망과 분노, 후회와 슬픔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는 양손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다짐했다.

손이 편안함을 되찾기 전까지 그 누구의 손도 잡지 않겠다고.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작가의 이전글 소녀의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