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연쇄 고리
시즌 1 PROJECTION
글을 쓸 때, 하나의 문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모호한 지대에서, 우리 정신은 곧장 문법을 내뱉지 않을 적이 많다. 또한 우리 모두는 처음에 태생적으로야 어떤 문법도 가지지 못했을 테니. 우리네 질서는 학습된 결과이며,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우리는 이미 학습된 것들을 짜깁기해서 문장을 연달아 탄생시킨다. 그러나, 그 짜깁기에도 기준이 있을 테고, 우리는 여기 중간 어떤 모호한 단계에서 그 기준을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모호한 단계는, 우리가 일상적인 말을 하기 직전, 그렇게 문장이 구성되려는 어떤 직전 순간에, 그러니까 습관적이지 못한 어느 순간에, 습관적이지 못한 어떤 문장을 입으로 뱉어야 할 순간에 또한 더 선명하게 도래하고 있으리라.
일상적인 생성은 그렇게 앎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를테면 예기치 못한 은유가 가지는 독특한 유효성은, 그가 지금 과거 중에서도 어떤 과거에 비율적으로 더 매몰되어 있는지 또한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오늘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의 저 과거는, 그렇게 독특한 다른 은폐를 속삭인다. 그 자신이라는 재료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까닭에 미묘하게 어긋나는 여느 기억의 동어반복들은, 여타 다른 기억들과 함께한다는 미묘한 차이를 비율적으로 내포한다. 심지어는 우연히 마주한 오늘의 어떤 조건들 또한 내포한다. 짜깁기 그 자체의 우연한 조건을 긍정하는 태도 위에서, 그리하여 압도적으로 '고착된' 매몰 아닌 각각의 미묘한 매몰의 긍정 위에서 우리는 매번 다른 무언가를 마주한다. 이는, 개별 상황의 긍정인 동시에 각 상황의 문제의식의 독특성과 결부된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질문(가령, 어떤 삶을 추구하는가 등)은 거기서 구체적인 질문들로 분절된다. 그리하여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이 문제들은 추상적인 명분과 떨어져서 각각의 해결을 우리 자신에게 요청한다. 비로소 이 구체적인 문제들은 저 거대한 문제로부터의 거리와 그에 대한 당사자의 노력만큼 기량의 발달을 보증할 터다.
구체적 각 상황의 특이성을 고려한 문제들이, 거대하고 추상적인 문제 더미로써의 동어반복적인 삶으로부터 각각의 역량으로 도출되어 설정된다. 끝내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곧장 직면하여 당 문제들을 얼마나 가공하여 움켜쥐고 있었느냐에 따라, 그러니까 그게 끝내 또 다른 구체적인 문제들과 함께 언젠가 다시 제기되는 문제 설정 위에서 나중에야 해결될 수밖에 없더라도, 요는 '얼마나' 끊임없이 해결을 시도했느냐에 따라, 마찬가지로 불가능할지도 모를 저 문제들을 포기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 문제 자체를 어느 정도로 가공해 왔느냐에 따라 딱 그만치 앎 밖으로 뛰쳐나갈 생성의 기량과 우리는 가까워질 터다. 의도 하지 않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이 마침내 우리의 기량에 편입되는 건 그처럼 해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민의 강도'를 통해서일 테니까.
이 모호한 지대, 이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네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야기에 결론을 도입하듯 모든 삶에 쉬이 결론 내리길 누군가는 좋아한다 하더라도, 우리 삶은 특히나 그리 쉽게 결론 날 수가 없으니까. 마지막 순간에 누구의 삶이라도 결론이 그렇게 매듭지어질지는 모르겠다. 혹 그 순간마저도 우리 삶은 매듭이라기보다 지속에 가까우리라. 최대한 많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오늘을 특정한 미결로 남길 수 있는 기량, 그러므로 결론을 미루면서 이 순간들을 계속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강도의 태도를 이어갈 수 있는 기량, 심지어 해결 후에도 '고민'을 끝내지 않을 수 있는 기량은 삶 자체의 모호함과 불안을 직면하여 살피고자 하는 의지와도 결부되어 있지 않나.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고민에서 벗어나고자 종종 결론 낼 수 없는 삶 그 자체에, 혹은 저 삶에 포함된 무수한 사유의 과정 자체에 하나의 결론(전체)을 '굳이' 가정하여 (종종 스스로 어른스럽다 간주(역투사/내사/동일시)하려는 방어기제로) 도피하곤 하지 않던가. 그렇게 삶을 모조리 살피는 건 어쨌든 불가능하다는 낙담 위에서 무슨 결론이든 가지고 살아야 어쨌든 불안하지 않다는 도피가 아니라, 그 '불안'에서 결코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면하며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관건 아닐는지. 그렇게 '불가능'을 가공하고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예컨대 은유가 감정에 스미고 상상이 추론이 되는, 그리하여 공상이 현실이 되는 삶의 과정 아니던가. 이런 과정을 통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당 과정의 와중에 터무니없는 망상에서 현실적인 과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이는, 무수한 상대적 현실(가설) 속에서 절대적 현실(필연성)을 구별하여 가공하는 방식으로 다시 앞서 인지했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현실 모두에 영향을 끼쳐 예의 목적지(과녁)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기량의 현상적인 연쇄 고리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