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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파고 15화

5.2 상흔

5장. 통증, 비틀린 궤적

by 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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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게 제아무리 도약의 가능성을 간직했다 하더라도, 그토록 통증 어린 균열이 남긴 흔적은 그리 굳어져, 예의 가능성과는 별개로 새겨진 언젠가의 상흔으로 남겨지기도 하는바. 통증은 순간을 흔들지만, 상흔은 그렇게 굳어져 새겨진 지도를 매 오늘들에 영원히 다시 주입하는 것이다.


가령 피부의 흉터로 치자면, 찢겼던 살이 아물며 남긴 단단한 자리는 이전의 살과는 결이 얼만치는 다를 텐데. 이 상흔은 과거의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아로새겨져 있음을, 저토록 왜곡되기 쉽다는 [기억]이 아닌 방식으로 [직접] 증언하는 셈이리라.


정신의 상흔도 저와 다르지 않을 터. 지나간 말, 부서진 관계, 치명적 실패 — 저 모든 상흔은 마음에 흉터로 남아, 가끔은 아문 줄 알았던 자리로부터 여전히 미세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상흔은 단순한 ‘흔적’ 그 이상일 모양인바. 그것은 이후 유속의 양상을 바꿔 조작하는 일종의 지도, 혹은 경계로써 앞서의 소위 무수한 고통의 기억들과 아울러 작동하는, 말하자면 보다 직접적인 무엇인 모양이다. 그처럼의 무수한 기억의 가능성들 뿐 아니라 이리 상흔까지도 안고 흐르는 유기적 삶이라는 유속은, 그 이전 지나온 지형과 오늘의 지형을 동일한 방식으로 답습하거나 감응할 순 없겠으므로. 그리하여 그가 만에 하나 비록 같은 곳을 향할지언정, 그는 흉터를 그 자신에 포함하기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니까 마치 상흔이 도무지 없었던 양으로 나아가진 못할 모양이다.


때로 상흔은 부끄러운 무엇이고, 그래서 감추고자 하는 무엇이며, 마침내 지우고자 하는 무엇이 되기도 했더랬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기억이라는 동전의 더욱 깊은 뒷면, 그러니까 이는 저리도 자주 우리 삶이라는 운동의 형태 자체가 되는 뿌리가 되곤 하지 않던가. 따라서 바로 그 흉탄으로부터 무사했던 바로 그자는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유속 안에서부터 이미 숱하게 부서지고, 맞부딪히고, 갈라지고, 다시 봉합되어 지금에 이른 채로도 여전히 버티는 중인 바로 그이는 비로소 예전의 그자와는 완전히 다른 이일 테니. 상흔은 과거 표식으로서의 기호를 뛰어넘어, 매 오늘에 완전히 유효하게 때마다 작용하며, 그렇게 바로 그 오늘을 지속적으로 다시 구성하는 중일 텐데. 고통으로 치자면, 기억을 매개 삼지 않는데 아울러 다른 매개도 없이 직행하는 포석일 양이겠으므로.


결국 우리는 상흔 없는 자로서가 아니라 저 모든 상흔을 통하여 재차 매번 다시 구성되며, 그리 계속해서 흘러가는 자로서, 그러니까 그저 흉터 다발이 아니라 다만 흉터 다발의 상호작용 그 자체로서 때마다 다시 탄생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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