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시간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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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제아무리 연달아 같은 말을 뱉는다 한들, 그건 결코 ‘완전히’ 같은 사건이 될 수 없다. 반복이라 여겼던 사건들도 어쨌건 언제나 차이를 품는다. 완전히 <동일한> 반복은 없다. 그리 정의된 매 반복은 <정확>하게는 모방도, 복사도, 재생산도 아닐 수밖에 없다. 그래봐야 이는 매번 다르게 울리는 변주變奏 정도에 불과할 터다.
예컨대,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 한 모금조차 그 결은 다르다. 어제와 오늘의 갈증은 분명 다르며, 거기 어제와 오늘의 입술 또한 다르다. 기억 너머로 호출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떠올리는 여느 풍경들, 심지어 늘 옆자리에 있는 같은 사람의 얼굴조차 동일하게 반복된다기보다 매번 달리 각인되고, 달리 겹쳐지며, 또 때마다 새롭게 ‘느껴질’ 양이다.
그리 반복은 무언가 ‘보존’하려는 양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은 무언가 매번 변형시키고, 또 다르게 엮어내는 특정 운동이다. 반복은 차이를 껴안으며, 매 순간 조금씩 그 자체를 비틀고, 그리 조금씩 변형되며 흐른다. 그토록 반복되는 것들 안에서 우리는 종종 미세한 이질감, 불협화음, 혹은 뜻밖의 떨림을 감지하곤 한다. 같은 문장을 수백 번 읊어도, 같은 행동을 수천 번 시도해도, 거기엔 무언가 사소한 차이라도, 그리하여 미세한 불균형이라도 거품처럼 스민다.
가령, 여느 방향대로의 약속이 그를 예측 가능할 만치 예의 방향대로 이끌 것이라는 ‘신뢰’에 대해서조차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이런 ‘안정’된 예측 가능성조차, 저 한 켠의 ‘불안’을 감추고 있는바. ‘신뢰’나 ‘안정’과 같이 ‘예측 가능성’을 담지하는 무엇 또한 자연히 저기 저 예측 불가능성에 대항하며 구성되곤 하지 않던가. 소위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사제들은 근본적으로 그 자신의 탄생부터 불안이 자리한단 걸 긍정하는 <역량>을 숙련 중인 셈이라 이에 반응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쳇바퀴처럼 굴러가기로 약속한 그토록 신뢰하던 삶조차 그 반복 내에 차이를 품고 있으며, 거기서의 신뢰는, 그가 반복을 위해 파생되는 저 온갖 차이들을, 그러니까 소위 무수한 ‘불안’들을 얼마나 잘 다루고 관리할 수 있는지로 그 정도가 가늠될 수 있으리라.
그러하기에 날 것의 반복은 결코 정체(성이)나 정지(점의 [순간]으)로 귀결될 수 없다. 도리어 반복이야말로 끊임없는 차이의 직접적인 과실이리라. 가령 특정 반복의 동일성을 애써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 이상으로 다른 차이를 더욱 생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할 테니. 만약 그러한 일관된 무늬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그처럼 그저 무료로 완전히 동일한 반복이 ‘안정’적으로 가능하다면, 그 자리뿐 아니라 세계 자체가 이미 운동이 멈춘, 고로 유속 따위는 없는, 시간도 의식도 마감된 상태일 테다.
그러나 삶의 유속은, 멈추고자 한다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이를테면 언제나의 반복 속에서도 이미 조금씩 틀어졌고 또 여전히 틀어지고 있다는 걸 감안한 채로도 매번 다시 새로이 흐르며, 거듭 그 반복을 만들어내고자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핵심적인 차이, 그 비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어찌나 고단하게 단련하고, 그리 ‘반복’하며 숙련하곤 하는지. 멈출 수 없는 유속 안에서 우리는 운명적으로 마주친 차이를 감안하며 반복을 구성하거나 숙련하며 차이를 구성해 내고자 그토록 영영 스스로 조율하고 있지 않던가.
따라서 반복 또한 유속의 폐쇄가 아니라, 유속 내 새로운 차이를 구성하고 산출하는 파도이기도 할 텐데. 저 유속의 일시적인 반복조차 얼마나 많은 차이를 비용 삼고 있을는지. 고로 이미 그것은 온전한 반복일 리 없다. 마찬가지로 한 가지 사소한 차이, 그 비결을 위해 얼마나 무시무시한 숙련의 노력이 반복적으로 청구될는지. 그처럼 유속은 되풀이되는 양 보일 적 있겠으나, 기실 매번 다른 리듬과 울림을 갖고서 우리를 다음 변주로 밀어붙인다. 그처럼 유속의 요소들 각각은 독립적인 차이를 지닌 양 보일 적 있겠지만, 기실 매번 같은 재료를 가졌다 가정해서조차 조금이라도 달리 담금질하는 것이다.
그리 차이는 결코 미래로의 망상이 아니라 과거의 지루한 숙련 과정을 비용 삼을 수밖에 없다. 그리 반복은 결코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미래로 새로이 열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수한 반복들 사이에서 부서지고 또 이어지고, 그 반복들 덕택에 다시 차이로 나아가는 셈이라.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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