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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06. 2024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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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행위성을 기입하게 하고, 행위의 유효성을 토대로 예의 행위성을 반성하게 하고, 반성을 토대로 플레이어는 자기 자신만의 라이브러리에 해당 행위성을 등록한 후, 이를 다시 다른 ‘플레이’나 ‘현실 행위’에 활용하도록 돕기도 하는가 보다. 이를테면, 장례식이나 결혼식과 같이 각각의 게임은 때마다 명료한 목표가 있고, 이 목표는 일회성이며, 매 일회성인 목표를 통해 그 과정(고투)을 플레이어에게 얼마간의 레퍼런스로 남기는 모양이다.

가령, 승패를 논하는 게임에서의 행위의 유효성은 물론 ‘승패’에 기반한다. 게임 바깥에서의 가치와는 관련 없이, 게임 내부에서 특정 행위가 그 목적에 대해 얼마나 유효성이 있었는지, 그리하여 저와 ‘승패’와의 영향 관계는 어찌 되는지 게임 내부의 가치를 게임 바깥에서 ‘반성’하다 보면, 게임 바깥에서의 현실 행위성의 ‘역량’이 증가되어 자율성이 강화되는 식이다. 그리하여 과정에서의 ‘역량’ 혹은 ‘즐거움’을 위해, 게임 내부에 설정된 ‘목표’는 이와 같은 게임 밖에서의 반성의 순간 ‘일회성’으로 탈락해야 한다. 말하자면, 진정한 목적이 아닌 미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플레이 중에는 바로 이 미끼를 미끼가 아닌 진정한 목적으로 간주하도록 스스로 이입해야 한다. 이 미끼는 디자인된 게임 설정 내에서만 작동한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미끼를 전적으로 물고자 욕망하도록 디자인된다. 그가 전적으로 이입‘하지’ 못 한다면 플레이(고투/과정)를 즐길 수 없고, 예의 쾌락뿐 아니라 플레이 자체에서 등장하는 여러 이점을 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최소한 플레이 중에는 전적으로 플레이에 몰입해야 한다. 그러나 플레이가 끝나면, 일회성의 목표로써의 미끼가 부속품으로 지니고 있던 그 모든 ‘가치’들을 모두 벗어나 게임 밖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이 현실 위에서야 게임 속 플레이를 ‘반성’하는 것이다. 그리 반성된 레퍼런스들은 비로소 그의 역량(행위성)으로 등록된다.

게임의 실행 중으로 보면 플레이의 목적(미끼)은 ‘이입의 대상’이지만, 실행 후로 보면 플레이 자체가 ‘반성의 대상’이다. 특히 게임의 미끼가 과도할 정도로 명료한 경우, 이 미끼에의 이입과 플레이에의 반성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중첩된다. 균형은 이 중첩에서 도래한다. 게임을 플레이할 적엔 명료하게 당 게임의 미끼를 물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게임이 끝나면 곧장 거기서 나와야 한다. 명료한 목표는 명료한 행위성을 구현하도록 플레이어를 종용한다. 그리 담금질 된 행위성들이 현실에서 조합되어 활용되는 것이다. 그는 게임에 전적으로 이입할지언정, 게임이 끝나면 곧장 이입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임에서 연마한 ‘행위성’은 ‘도구적’이다.

이입하고 벗어난다. 여기서 행위성의 유동성은 행위성 자체와 아울러 연마된다. 계속해서 이입하고 벗어나다 보면, 우리는 잘 이입하고 잘 벗어날 수 있다. 그런가? 무수한 게임에 이입했다 벗어나는 과정은, 우리가 그동안 라이브러리에 등록한 행위성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불필요한 행위성의 전원을 끄는 작업 또한 능숙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유념해야 하는 건, 현실은 게임과 같이 명료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명료한 가치의 환상은, 수업의 목적을 학점으로 환원해 원하는 내용의 수업보다는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으로 학생들을 끌어들인다고들 한다. 또한, 여느 교수의 수업 진행 방식으로 하여금 지식을 맞춤형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학생들의 긍정적인 리뷰를 의도하며 전달하는 식의 관성을 만들어내게 할 위험이 있다고들 한다.

살펴보면, 게임은 명료한 목표에 의존하는 행위 모델이고, 게임을 통해 각각의 행위성을 낱개로 연마하여 자기 라이브러리에 등록한 ‘행위성’은 현실에서 조합하여 사용 가능하다. 다만, 현실은 게임과 다르므로, 게임에서와 같이 ‘명료한 목표’를 가정하기 시작하면 ‘도덕적’ 혹은 ‘역량적’인 오류를 뱉을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의 목표는 게임에서의 저 명료한 ‘미끼’와는 달리 대다수 ‘복합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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