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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10. 2024

능동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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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하면 과거에 이입했던 즐거운 환상이란 행위성의 라이브러리로 돌아가 이를 재생하며 도망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직접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는 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상의 미래 인물에 이입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러한 인물을 스스로 구현해 내야 한다. 그리하여 이입한 인물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소위 미디어에서 그토록 말하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은 이미지’ 따위에 동일시하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연출하는 게 아니라, 그저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면서 해결한 인물을 구현해 내면 그뿐이듯.

우리는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에 이입하는 무수한 등장인물들을 알고 있지 않나. 가령 문학에서 등장하는 그러한 인물들은 현실의 문제들을 끝끝내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어쨌거나 직접 이입하기는 하지 않던가. 문학의 등장인물이 자기 상황에 이입한다는 건, 어쨌거나 당면한 상황에 대한 규칙을 내면화한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게임에 이입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한다. 때때로 명료할 수도 있고 명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규칙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원치 않았던 미끼를 물도록 종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게임이나 문학, 영화나 다른 매체들로부터 (가상의) 행위성들을 등록하는 것은 현실에서 그 행위성들을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사소한 행위성이라도 사용하려면 우리는 당면한 상황(현실)에 (능동적으로) 이입‘해야’ 한다.

저와 같이 능동적으로 이입‘한다’는 건 당면한 정황이 다소 매혹적이지 않더라도, 그리하여 가령 실패가 예견되어 있더라도 행동한다는 걸 의미할 모양이다. 어쩌면 주인공의 역할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내부의 행위성을 조합하여 이입하고 또 행위해야 한다. 물론 여기 이 ‘능동적인’ ‘이입’에 관한 매혹적인 ‘이미지’들이 없는 건 아니다. 무수한 만화영화에서, 또 온갖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에서 고난과 역경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들의 ‘이미지’가 등장하기는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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