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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11. 2024

게임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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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기 저 ‘이미지’만으론 늘 부족할 터다.

요컨대, 수동적 이입의 이미지는 목표가 쉬이 특정되기도 한다. 악을 물리치고 지구를 지키는 ‘영웅’의 목표는 지구를 지키는 것이다. 한편 고난과 역경에 대한 태도들의 ‘이미지’가 말하는 바도 유사하다. 기실 능동적으로 이입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거기 이입한다면, 결국 당사자는 능동적으로 이입하는 모습에 수동적으로 이입되는 셈이니까.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그리하여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운명 위에서조차 서로를 갈구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미지’는, 불가능에 굴하지 않는 ‘능동적인 이미지’로 독자를 매혹하여 독자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예의 이미지에 이입하게 종용하기도 한다.

능동적인 이입은 당장 마주한 상황에 대한 이입이기도 하지만, 여타 특정 상황에 이입하고자 노력하는 행위이기도 할 모양이다. 설령 그 상황이 멋지지 않아도, 혹은 그 상황에 서 있는 가상의 인물(이입의 대상)의 이미지가 멋지지 않을수록 능동적이어야 하리라. 그러니까 그 순간 당사자의 이입은 상황 그 자체에 ‘강제로’ 맞추어져야 하지 않나(우리 정신은 이 ‘강제성’ 혹은 ‘폭력성’을 통해야만 익숙한 관성(동어반복) 밖(사유)으로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령, 그는 얼마간은 상황을 파악하고자 해야 한다. 상황의 목표나, 상황에 속해 있는 제도들의 목표나, 상황에 속해 있는 다른 등장인물들 각각의 목표를 추정해야 한다. 그게 제아무리 낯설고 추상적이거나 복합적일지언정, 혹은 모종의 이유로 이를 완벽히 추리하는 게 불가능할지언정 시도해야 한다.

그는 상황이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거기 작동하는 제도들이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거기 속한 다른 인물들이 어떤 추상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지 추리해야 한다. 그는 개별 게임 디자이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자기만의 게임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각각의 성향이 어떤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어떤 전략을 짜고 있는지.

그렇게 그는 각각의 다른 인물들이 자기 자신의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제도가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나아가, 게임 디자이너가 일종의 도시계획자나 건축가와 유사하다는 저자의 은유에 빗대자면, 도시 계획이나 건축의 의도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능동적인 이입을 위해서 그는 그 자신이 플레이어일 뿐만 아니라 게임 디자이너가 되어 각각의 추상적인 규칙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우선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 이입한다는 건, 현실에 속해 있는 다른 이들이나 제도들의 게임이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찾아 연산한다는 ‘목적’을 자기 자신의 ‘목적’ 안에 포섭한다는 의미 아니겠나.

따라서 능동적인 이입의 미끼는, 개별 상황마다의 범위를 설정해야 하는 모호함도 뒤따를 모양이다. 얼마만큼 파악해야 하는가? 과연 할 수 있는 최대로 파악해야 하는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얼마만큼의 체력을 스스로에게 남겨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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