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상해 이야기 12-너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feat 2,838Km

by 안나


2022년 7월 7일 목요일


다시 시작하는 격리 생활입니다.

상해와서 늘은 것은 봉쇄에 대한 내성과 이 나라 체제에 대한 반항감이에요.

인터폰 벨이 울립니다. 큰 물건이 도착했으니 빨리 내려오랍니다.

뭐지 하고 내려갔더니 커피나무가 도착했네요

제가 2월 춘절에 윈난성 바오산시 누지앙촌 총강쩐云南省 保山市 怒江村 丛岗镇에 있는 커피 산지를 갔다 왔어요 그때 만난 농장주 하고 교류하고 있는데 커피나무 한번 키워보라고 하면서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원래는 3월에 보내기로 했는 데 상해 봉쇄로 7월에서야 보내셨어요.

포장을 벗기니 나무 프레임 속에 커피나무 2그루가 있네요.

너무 견고해서 도저히 제가 해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하긴 그렇게 튼튼하니까 4일 동안 2.838Km를 트럭 타고 왔죠.

악력도 없는 제게 근력이라고 있을까요.

집에 있는 모든 공구를 들고 1층 현관으로 내려갔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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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 인구의 절반이 남자인데 저를 지금 도와줄 수 있는 남자가 한 명도 없어요.

봉쇄하면 1층 현관문을 밖에서만 열 수 있게 구조를 바꿉니다.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 없으니까 와서 나무 프레임을 해체해 줄 수 있는 남자분이 없어요.

농장주에게 연락했어요.

지금 제 힘으로는 나무 프레임을 해체할 수 없고 봉쇄 풀리는 내일 밤이나 모레 아침에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커피나무가 죽을 거래요.

이미 애들이 4일 동안 굶었어요.

시간의 신은 왜 제게 이렇게 가혹할까요.


지금부터는 저는 어떻게든 나무 프레임을 뜯어서 커피나무에 물을 줘야 하는 절대 숙명과 마주합니다.

어설프게 공구 들고 덤벼 봤자 제 힘으로 해체할 수 없는 이 견고한 철옹성 나무 프레임을 어떻게 하죠.

생각해보니 제가 아파트를 못 나가지 나무가 못 나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현재 상황을 주절주절 설명합니다.

다행히 사무실이 이 근처인 지인 분이 점심시간에 와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1층에 지키고 있는 보안이 문을 열어줬고 커피나무를 내보냈고 지인 분이 체감 기온 50도 안 되는 상해의 이글거리는 한 낮 땡볕 속에 나무 프레임을 해체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다시 나무를 1층 현관 안으로 넣어주고 지인 분은 가셨습니다.

이 은혜 평생 안 잊을 게요.


1층 현관에서 한 그루씩 14층까지 옮기고 일단 욕실로 데리고 가서 물 흠뻑 주고 다시 베란다로 옮겼어요.

화분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일단 포장한 상태로 그냥 올려놨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힘을 사용했어요.

그다음 날까지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리했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근력 좀 가지고 태어나게 해 주세요.


순펑顺丰이 제게 커피나무 두 그루를 데리고 왔어요.

순펑은 중국의 DHL 혹은 FEDEX라고 보시면 되세요

1993년에 오토바이 택배원 출신인 왕웨이 회장이 설립했고 지금은 중국 1위의 프리미엄 택배 회사입니다.

자체 보유 화물기만 60대가 넘고 올해 최초로 드론 무인 택배 허가를 받았습니다.

군웅할거하는 중국 택배 시장에서 최고의 신뢰성, 신속성, 편의성을 가진 업계 1위입니다.

설립자 왕웨이 회장은 2016년 북경에서 순펑 택배원에게 갑질했던 사람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 형사처벌을 받게 한 사이다 결말로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순펑 회사 직원들의 애사심과 고객들의 회사 호감도가 올라갔을 거라는 것은 구체적 데이터 없어도 충분히 입증 가능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당시 북경 살던 제가 파리에 사는 조카에게 보낸 마스크를 파리 락다운 전날에 배달해준 능력의 순펑이에요

나중에는 DHL이나 FEDEX가 미국의 순펑 같은 회사라고 소개될 수 있어요


이 순펑이 윈난성에서 상해까지 제 소중이들을 데리고 왔어요.

두 그루의 커피나무가 2,838Km를 트럭 타고 그렇게 제게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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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도 커피나무 두 그루 키웠는데 실패했어요.

상해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고 해서 다시 시도했습니다

저도 과연 이 두 그루의 커피나무가 잘 자랄 수 있을지 몰라요.

그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 봉쇄 폭탄 터지고 있고 매일 받아야 하는 핵산 검사는 고문 같은 이 상황에서 제게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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