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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 50-밤마다 MRI

by 안나

지난해 뜨거운 화제였던 드라마 <지옥>

지옥에서 온 세 악마는 어설픈 CG로 무서워야 하는 데 귀여운 세 마리 악마라는 평을 얻었죠. 너는 며칠 몇 시에 지옥에 갈 거라고 속삭이는 듯 고지하는 악마가 무서워야 하는데 CG처리가 어설퍼서 귀엽다는 평을 받았어요. 그런 귀여운 악마 아니고 진짜 지옥에서 온 괴물이 저희 집 창 밖에서 으르렁거려요.


제가 지금 사는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신축`이라는 이유였어요. 아파트를 둘러싼 공터와 공사판을 눈에 콩깍지가 씌인 것도 아닌 데 못 봤어요. 신축 아파트를 선택한 댓가는 상해 봉쇄만큼 혹독해요. 지난해는 반복되는 봉쇄로 멈췄던 공사가 올해 들어서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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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이나 건물을 짓는 것도 아니고 사회 인프라 공사예요. 무슨 터널과 지하 차도를 만드는 공사인데 놀랍게도 만기가 2025년 12월 31일이에요. 이 공사 끝나기 전에 제가 먼저 떠나요. 전 떠나는 날까지 지옥에서 온 괴물처럼 으르렁거리는 공사판 소음과 먼지 속에서 살아야 해요. 이사도 생각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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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임대 제도는 보통 입주할 때 3개월 치 월세와 한 달 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내요. 만기 전에 나가면 본인이 한 달 치 보증금을 못 받아요. 제가 사는 집 만기가 2023년이니까 중간에 나가면 저는 한 달 치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요. 부동산 중개비가 집세의 50%예요.


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구베이 지역은 집주인이 중개비를 내요. 그런 경우에는 중개비를 월세에 포함시켜 월세를 올려서 받아죠. 부동산 중개 업체는 거래 성사 전에는 열심히 연락하지만 임대 계약서 쓰고 중개비 받으면 그 이후는 헤어진 애인보다 더 매정해요.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한국 수준의 포장 이사를 하려면 국제 포장 이사 업체를 불러야 해요. 비용도 당연히 국제포장이사 수준이에요. 로컬 이사 업체를 이용하면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물건의 파손, 훼손, 분실, 오염은 기본이고 포장과 정리까지 모두 제 몫이에요.


제가 북경에서 상해로 이사 올 때 5톤 트럭 한 대 가격만 9,000위안 냈어요. 나머지 포장과 푸는 비용은 별도였고요. 상해 시내에서 이사를 하면 4~5,000 위안 정도 나온다고 하네요. 보증금, 중개비, 이사 비용이라는 3개의 허들은 감수한다고 해도 선택지가 없어요.


이 동네 통틀어서 구축 아파트 아닌 곳이 없어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단층 아파트가 많아요. 그나마 새 아파트라도 해도 10년 이상은 지난 아파트들이라 마땅히 갈 곳이 없어요.

결국은 전 상해 떠나는 날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 이유로 밤마다 MRI 찍는 기분으로 살아요. 낮에는 공사를 하든 맘대로 하고 밤에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요. 사회 인프라 공사라는 대의명분 아래 24시간 열심히 공사해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민원 넣었다고 저 보고도 넣으래요.

아니 저 외국인인데요.

저 보고 상해시 정부에 민원 넣으래요.


제발 밤 10시부터 6시까지만이라도 공사 안 했으면 좋겠어요. 자려고 누워있으면 창 밖에서 들리는 공사장 소음은 지옥에서 온 괴물이 고지하는 소리 같고 그 파장은 MRI 촬영기 안에 들어가서 누워있는 기분이에요.


중국 MRI 촬영 단가가 세계에서 제일 낮은 편이에요. 중국에서 MRI 촬영기를 생산도 하고 운영, 유지 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적게 들어서라고 하네요.

저 경추, 척추, 요추 이렇게 3군데 촬영했는 데 모두 한국 돈으로 3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중국 의료 보험으로 비용을 낼 수 있고 환자에게 방사능 노출이 없어서 환자도 의사도 MRI 촬영을 선호해요. 중국의사들이 MRI 연구로 쓴 의학 논문도 다른 나라보다 많대요.


의료 보험으로 MRI 촬영 비용을 낼 수 있지만 결국이 본인 부담금에서 사용하는 거라서 자기 돈으로 찍는 셈이긴 해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백만 원도 더 나왔을 MRI 촬영을 여기서 할 수 있기는 해요. 아무리 MRI 촬영 단가가 낮다고 해도 밤마다 MRI 촬영통 안에 들어가서 자는 느낌은 사양하고 싶은데요.


오늘 밤도 전 MRI 찍는 기분으로 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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