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기차
지난 주말에 칭다오에 갔다 왔어요.
산둥성은 제가 2년 살았던 곳이라 산둥성에 있는 지명만 들어도 반가워요. 상해는 아직 반팔, 반바지 입어야 하고 낮에는 돌아다니면 땀범벅인데 칭다오는 확실히 북쪽이라 아침저녁 선선해요. 상해에서 칭다오까지는 기차로 5시간 20분 걸려요.
칭다오하면 맥주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나와요.
마치 피자와 콜라, 치킨과 생맥주, 파전과 막걸리처럼요. 모두가 알고 있는 칭다오 맥주는 독일사람들이 칭다오에 거주하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유럽사람들이 물이 안 좋아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에요.
1842년 아편전쟁 후, 각국 열강은 중국 대륙의 소위 몫 좋은 지역을 차지해요. 독일은 뒤늦게 1896년 독일 선교사 피살 사건을 빌미로 침략해서 1898년에 99년 동안 칭다오를 조차 해요. 당시 빌헬름 2세 황제는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을 위해 맥주를 보내주지만 독일에서 칭다오까지 배 타고 온 맥주가 맛이 있었을리가요.
독일은 자기네들이 마시기 위해 맥주를 만들기로 했고 독일에서 장비를 싣고 와서 라오산의 좋은 물과 산둥성의 풍부한 쌀을 이용해서 칭다오 맥주가 태어났어요. 청일전쟁 승리로 일본이 칭다오를 점령했고 독일군이 남기고 간 맥주공장은 일본인 차지가 되어요.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패배로 맥주공장은 국민당이 차지했다가 국민당이 대만으로 가면서 중국 소유가 되어요.
지금 칭다오는 맥주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기차역에서도 선물용 맥주를 팔고 칭다오 어디에서나 칭다오맥주를 마시고 즐길 수 있어요.
칭다오를 조차한 독일은 식민지를 지배한 대부분 나라가 그랬듯 철도를 놓아요.
1899년 칭다오와 지난을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했고 1904년 산둥성 대부분 지역까지 철도를 개통해요. 철도를 이용해 독일은 산둥성 반도 대부분 지역을 지배할 수 있었어요.
지금 제가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은 독일이 산둥성을 지배하기 위해 놓은 철도였고 제 앞에 놓인 맥주는 독일군이 마시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맥주예요.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아편전쟁이었고요.
윈난의 커피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마시기 위해 커피콩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윈난커피산업의 시작이었어요.
우연이었을까요 필연이었을까요. 우연 없는 필연은 없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