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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 이야기2-지인이 차려준 밥상

by 안나

2022년 6월 3일 금요일


중국은 6월 3일부터 5일까지 단오절 휴무라서 오늘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에요

미뤘던 일을 몰아서 해요

아침에 미장원 갔어요.

미장원까지 4km 정도 되는 데 천천히 걸어서 갔어요

가면서 거리를 구경하면서 갑니다

어 이 가게도 열렸네

저 가게도 열렸네

가게가 문 연 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함을 신기해하면서 걸어갔어요

아직은 외출하는 게 어색해요.

아기가 배밀이하다가 걷게 되지만 걷기가 아직 힘들어 자꾸 배밀이하려는 것 같아요.


베라 헤어 혜진 쌤을 만납니다

1월 31일에 왔고 6월 3일에 다시 만나는 거예요

선생님이 제 머리를 보더니 어머나 머리가 의욕을 상실했어요 하시네요

머리카락도 격리에 지쳐서 힘이 하나도 없네요

의욕을 상실한 머리카락을 선생님께서 열심히 만져 주셔서 다시 살려냈어요.

선생님 그동안 어떻게 버티셨나고 했어요

진짜 너무 힘들었다고 하시네요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격리당하고 영업도 못하고 임대료와 직원들 급여를 감당해야 했던 자영업자들이 최대의 피해자입니다.

사람들이 미장원에 덥수룩한 모습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말끔해져서 나가요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계속 예약 손님이 있길래 점심 어떻게 하냐고 했어요

그동안 일 못한 것 생각하면 이렇게 일하는 것이 좋다고

점심 안 먹어도 된다고 하시네요

상해 봉쇄가 남긴 상처는 이렇게 깊습니다.


홍췐루 한인 타운으로 갑니다.

평소에는 심한 교통 체증으로 유명해서 교통 헬이라고 불리는 곳인데요

예전 모습처럼 길이 막히는 게 반가울 정도예요

달라진 것은 장소 마를 스캔해야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어서 사람들이 줄을 서는 모습입니다.

홍췐루 지인 집에 가서 폭풍 수다를 떨고 지인이 만들어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도 드디어 남이 차려준 밥을 먹었습니다


격리 기간에 따라서 새로운 신분제가 생겼습니다

4월 1일부터 격리한 사람들은 성골

3월 28일부터 격리한 사람들은 진골

저같이 어리바리 3월 18일부터 격리당한 사람들은 육두품이라고요

격리 60 일한 성골들은 격리 75 일한 육두품 앞에서는 말도 하지 말라고 농담합니다.


발마사지 집에 갔어요

저를 마사지해주시는 마사지사님이 반겨주시네요

봉쇄 기간 동안 급여가 없었다고 하네요

보통 마사지하시는 분들은 마사지하는 횟수와 시간에 따라서 급여를 받거든요

상해 봉쇄의 상처는 이렇게 넓습니다..


지금 미장원이고 마사지 집이고 사람들이 붐벼요

사람들이 봉쇄 기간 동안 못했던 머리와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 몰리고 있어서 예약을 해도 기다려야 하지만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봉쇄 해제 후 다시 하루 만에 재 봉쇄되는 곳도 나오고 72시간마다 해야 하는 핵산 검사의 불편함과 강제성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거머리처럼 붙어있습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사과와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봉쇄 기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에게 가해진 유무형의 폭력에 대해서 아무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상해 영사관이 봉쇄가 풀리던 6월 1일에 단오절 휴무 공지를 올렸습니다

상해 교민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휴무 공지만 올려서 교민들의 감정을 건드렸습니다


좋은 노래는 음정 박자 맞고 고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부르는 사람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면 음정 박자 틀려도 좋은 노래가 될 수 있다고 하네요

한국 JTBC 예능 뜨거운 싱어즈에서 나문희 님 김영옥 님의 노래가 음정 박자 맞고 고음이 있어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게 아니죠

그 안에 진심이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거죠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교민들을 위해서 어떤 시도라도 했고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교민들을 위해 어떠한 노래도 부르지 않았던 한국 정부도 우리를 가뒀던 중국 정부도 아무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라면 과자 나눠준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평소에 안 가봤던 길로 걸어가 봤습니다

평소 출퇴근 시간에 쫓겨서 아는 길로 해서 걷기 바빴거든요

걷다 보니 이런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배달 기사님들이 노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노숙 텐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봉쇄 기간 이분들이 배달을 해주지 않았으면 저희는 정말 식자재와 생필품을 구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노숙하면서까지 배달해주신 기사님들이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정부보다 더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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