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떠난 역사 탐방
2015년, 중국은 난징 리지샹利济巷에 위안부 기념관을 세웠어요.
중국은 아프고 치욕스러운 역사도 다 기록하고 남깁니다 관람은 위챗 공식계정에서 가능한데 아침 8시 되자마자 바로 예약 넣었는데도 실패했어요. 일행 중 3명은 예약했고 저와 다른 일행은 실패했어요. 기념관 예약이 이렇게 치열한 줄 몰랐고 과연 사람들이 위안부에 대해 이렇게 관심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5명이 같이 갔어요. 입장 안 된다고 하면 근처 카페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3명은 예약했는데 나머지 2명은 예약 실패했다고 사정하니 다행히 같이 들어가라고 하네요. 간단히 짐 검사하고 들어갑니다.
기념관 앞 광장에는 눈물의 벽과 동상과 사진이 있어요.
박영심 할머니를 모티브를 한 동상과 벽에 방울방울 맺혀있는 눈물들 그리고 67 분의 사진들..
건물마다 주제가 있어요. A, B 관은 중국 내 위안부 관련 자료, C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자료, D는 동남아 국가의 자료를 모아 놨어요. 낙태도구도 있는데 바라보기조차 힘들었어요.
C3는 한국관으로 한국 위안부 관련 자료와 사진을 모아 놨어요.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아시아 13국 여성들을 속이거나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그 흔적을 볼 수 있어요. 만행이라는 말로도 그 악한 정도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조차 저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위안’이었을까요. 일본 군인에게는 위안이었을지 모르지만, 폭력과 억압 속에 끌려가 고통받은 여성들에게는 결코 위안일 수 없죠. 중국은 ‘성노예’라는 용어를 씁니다. 저 역시 ‘일본의 강압과 성폭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대 피해국은 중국입니다. 자료를 보니 중국 전역에 걸쳐 위안소를 설치했더라고요. 신장, 시장 지역 말고는 다 설치했고 심지어 하이난다오海南岛도 있었던 것을 보니 정말 곳곳에 빠지지 않고 다 설치했다 싶어 어이가 없어요. 그중 난징에 제일 큰 위안소가 있었고 상하이에는 다이이치살롱이라고 일본 장교를 위한 고급 시설까지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최대 피해국은 중국이지만 (이런 수학 계산이 적합하지 않겠지만) 인구수 대비 피해자로 따지면 우리나라 피해도 크죠. 건물 한 동을 한국관으로 한국 관련 자료를 다 전시해 놨어요. 우리나라에도 없는 기념관과 자료가 중국에 있으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이라는 조형물 앞에 서면 눈물이 절로 나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그 눈물이 멈출까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80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분들이 대부분 사망했고 생존하고 계신 분들도 점차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고 있어요. 모든 피해자들이 다 사망했다고 해서 가해했던 사실이 사라질까요? 위안부 생존자 분의 말씀을 적어봅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피해자가 있었더라도 역사는 가해라고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