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난징위안부기념관

광복절에 떠난 역사 탐방

by 안나

2015년, 중국은 난징 리지샹利济巷에 위안부 기념관을 세웠어요.

Weixin Image_2025-08-18_155518_919.jpg

중국은 아프고 치욕스러운 역사도 다 기록하고 남깁니다 관람은 위챗 공식계정에서 가능한데 아침 8시 되자마자 바로 예약 넣었는데도 실패했어요. 일행 중 3명은 예약했고 저와 다른 일행은 실패했어요. 기념관 예약이 이렇게 치열한 줄 몰랐고 과연 사람들이 위안부에 대해 이렇게 관심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5명이 같이 갔어요. 입장 안 된다고 하면 근처 카페에서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3명은 예약했는데 나머지 2명은 예약 실패했다고 사정하니 다행히 같이 들어가라고 하네요. 간단히 짐 검사하고 들어갑니다.


기념관 앞 광장에는 눈물의 벽과 동상과 사진이 있어요.

박영심 할머니를 모티브를 한 동상과 벽에 방울방울 맺혀있는 눈물들 그리고 67 분의 사진들..

1.jpg
2.jpg

건물마다 주제가 있어요. A, B 관은 중국 내 위안부 관련 자료, C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자료, D는 동남아 국가의 자료를 모아 놨어요. 낙태도구도 있는데 바라보기조차 힘들었어요.


C3는 한국관으로 한국 위안부 관련 자료와 사진을 모아 놨어요.

Weixin Image_2025-08-18_155338_349.jpg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아시아 13국 여성들을 속이거나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그 흔적을 볼 수 있어요. 만행이라는 말로도 그 악한 정도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조차 저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위안’이었을까요. 일본 군인에게는 위안이었을지 모르지만, 폭력과 억압 속에 끌려가 고통받은 여성들에게는 결코 위안일 수 없죠. 중국은 ‘성노예’라는 용어를 씁니다. 저 역시 ‘일본의 강압과 성폭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대 피해국은 중국입니다. 자료를 보니 중국 전역에 걸쳐 위안소를 설치했더라고요. 신장, 시장 지역 말고는 다 설치했고 심지어 하이난다오海南岛도 있었던 것을 보니 정말 곳곳에 빠지지 않고 다 설치했다 싶어 어이가 없어요. 그중 난징에 제일 큰 위안소가 있었고 상하이에는 다이이치살롱이라고 일본 장교를 위한 고급 시설까지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최대 피해국은 중국이지만 (이런 수학 계산이 적합하지 않겠지만) 인구수 대비 피해자로 따지면 우리나라 피해도 크죠. 건물 한 동을 한국관으로 한국 관련 자료를 다 전시해 놨어요. 우리나라에도 없는 기념관과 자료가 중국에 있으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이라는 조형물 앞에 서면 눈물이 절로 나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그 눈물이 멈출까요?

3.jpg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도 80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분들이 대부분 사망했고 생존하고 계신 분들도 점차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고 있어요. 모든 피해자들이 다 사망했다고 해서 가해했던 사실이 사라질까요? 위안부 생존자 분의 말씀을 적어봅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피해자가 있었더라도 역사는 가해라고 기록합니다.

Weixin Image_2025-08-18_155058_63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두판다기지-둥둥이들 만나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