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75일 차-안나의 일기장을 덮으며

by 안나

2022년 5월 31일 화요일


오전까지 아파트 주민회에서 통지가 없었습니다. 다른 아파트들은 봉쇄가 풀리고 있다고 단체방에서 이야기 나왔고 드디어 주민회가 국가기관은 아니라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오후 1시쯤에서야 내일부터 나갈 수 있다고 통지가 떴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봉쇄 해제가 낯설었습니다.


33 번째 핵산 검사

이제 상해는 72시간 안의 핵산 검사 결과가 없으면 출근도 못하고 대중교통도 이용 못하고 아무 장소도 못 들어가요. 중국은 핵검의 나라가 되었어요. 내일 출근을 위해 1시간 동안 꿋꿋이 줄 서서 핵검 받았습니다.

밀려드는 업무 문의로 오후 내내 손가락에 불났어요.식당들도 문 여는 지 몰라서 내일 점심 도시락도 준비했어요.


봉쇄 기간 동안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 느낌이었어요.

항해를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온 배는 이전의 배가 아니라고 하네요.

이제 봉쇄가 풀리고 조금씩 우리는 일상적으로 예전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들 모두에게 봉쇄가 할퀸 상처는 남았고 고통은 미세한 파편이 되어 마음속에 박혔습니다.


긴 봉쇄 기간 동안 상해 시민들과 한국 교민들을 먹여 살린 분들은 중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 취급당하면서 트럭에서 먹고 자면서 화물을 운반해 주신 기사님들과 집에 가면 봉쇄당하니까 길거리에서 노숙하면서 배달을 해주신 중국 배달 기사님들이셨습니다.


봉쇄 기간 동안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리바리한 한국인이 굶을까 힘들까 걱정해서 소중한 식량과 물자를 나눠 주시고 구호품 못 받을까 애 닳아서 챙겨주신 중국 이웃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람은 국가와 국적을 초월해서 꽃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든 것의 소중함과 귀함을 배웠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많은 물건과 물자들이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겸손과 절약을 배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설 같다 영화 같다 했던 이 모든 일들은 순도 100% 현실이었습니다.

2020년 봄 북경에서 했던 락다운은 가벼운 전초전이었고

2022년 봄 상해에서 했던 락다운은 105일간의 겨울전쟁보다는 덜 혹독했습니.다


우리에게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넓이와 깊이가 다른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거예요.


저 내일부터 출근합니다

2022년 3월 18일에 시작한 안나의 일기장은 5월 31일에 75일 만에 덮습니다.


저는 시즌 2

<안나의 상해 이야기>로 상해 봉쇄 해제 후의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중국 상해시 민항구 치바오쩐 한 아파트에서 안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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