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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May 27. 2023

예술은 없다.

예술은 없었고, 예술이라 불리는 행위가 있었다.

뒤샹의 샘(Fountain, 1917)

  우리 시대에 예술은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경계 짓는 구분선이 없는 것 같다. 예전엔 다소 예술적인 무언가가 있었고, 예술적인 행위가 있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예술작품이고, 예술가인 존재들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노력을 몇 년 동안 들인 작가보다 그냥 즉흥적으로 뭔가를 보인 사람들이 더 예술가로 취급받는 것 같다.  작품이 온전히 작품 자체로써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의 뒷배경까지 고려되어 평가받는 지금 대체 뭐가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일까. 


  예술은 없다. 왜냐하면 누구도 예술을 본 적도 없고, 예술을 소유해 본 적이 없다. 예술을 감각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예술이 뭔지 모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다. 예술이란 행위를 통해서 예술가의 정신이 재현되는 과정이다. 플라톤식으로 말해서 또는 파르메니데스식으로 말해서 예술의 이데아는 없고, 감각이란 기만이다. 이데아의 세계에 원본이 없는데 어떻게 예술이 존재하고, 실재하지 않는 기만을 어떻게 있다고 하겠는가. 그저 감각이란 전기신호일뿐인데. 


  그렇다면 당신은 현시대의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예술을 무시하는 거요?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예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고 싶다. 예술을 무시하기보다 예술이 대중을 기만한다고 말하고 싶다. 왜 먹다 남은 바나나가 작품이 되고, 어느 예술가의 용변이 억 단위의 가치를 갖는 예술작품인가. 금으로 만든 바나나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식품일 뿐이고, 그냥 화장실에서 볼일 본 건데 왜 그걸 예술작품이라고 칭하고, 엄청난 값어치를 매기는 것일까? 아름다운 그림은 예술작품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실력 있는 발레리나가 안무를 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연주자와 같은 음악가도 예술가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근데 왜 바나나와 용변은 예술작품이라고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왜냐면 그건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나나의 껍질을 벗길 손과 그것을 먹을 입이 있다면 누구나 바나나로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소화기관이 있다면 누구나 만초니와 같이 용변을 보고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나나와 용변은 예술의 울타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울타리 밖에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은 그것들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중에게 예술이란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극적인 것인데, 어떻게 바나나와 용변을 예술로 보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고전 예술만이 예술이라고 하는 보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경계가 무너진다면 예술/비예술 그리고 예술가/비예술가는 어떻게 일원화될 것인가? 예술작품과 공산품을 비교하는 문제는 미학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예술가/비예술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예술이란 행위는 결국 정신적인 영감을 행위를 통해서 재현하는 것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결국 내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화폭에 재현하는 것이고, 연주라는 것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악기를 통해서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정신적인 영감을 표현한다면 모두 예술일까? 예를 들어서 내가 모기한테 물린 게 가려워서 그 부위를 긁고 싶다는 생각을 행위로 재현해서 그 부위를 긁으면 그것도 예술일까? 아마 이 경우 모두가 예술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그냥 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혀 예술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예술은 무엇이고,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것일까? 대체 우린 뭘 보고 예술작품이라고 해야 하며, 어떤 정신적 재현을 예술행위라고 말해야 할까? 


  왜 뒤샹이 공산품인 변기에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라고 명명하면 작품이고, 내가 시험지에 그림을 그리면 낙서일까. 내가 남의 집 담벼락에 그라피티를 그리면 범죄이지만 뱅크시가 하면 예술일까. 결국 예술과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은 한 영향력 있는 개인의 행위를 부수적으로 포장하는 담론이 아닐까? 사실 변기와 똥을 예술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비상식적인데, 우리는 그저 담론권력에 휘둘려서 그것을 작품이라 칭하고, 관람하러 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현대예술이란 그저 일반적인 행위이고, 현대미학이란 일반적인 행위를 예술로 포장하는 변명이 아닐까. 따라서 예술은 없다. 예술이라 불리는 행위가 있는 것이고, 예술작품이라 불리는 사물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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