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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Oct 22. 2023

원본을 넘어선

Simulation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1953)

  원본이 왜 복사본보다 더 우월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플라톤은 세상을 둘로 나누었다. 가지계(이데아의 세계)와 감각계(현실 세계). 전자는 이성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이고, 후자는 감각을 통해서 느끼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이다. 플라톤은 감각계는 가지계의 그림자에 불과한 모방이며, 감각계의 물건들은 가지계의 물건들의 모방이라고 한다. 따라서 감각계보다 가지계에 있는 완전한 이데아가 불완전한 현실과 다르게 완전하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플라톤은 감각계가 가지계보다 열등하며 가지계를 예찬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원본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고, 복사본은 그것을 흉내 낸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원본이 복사본보다 우월하다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은 다르게 본다. 그들은 이러한 이항대립의 해체를 중요시했다.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그리고 리오타르, 보드리야르가 있다. 앞의 세 명이 경계를 허물고 해체한다면, 보드리야르는 그들과 다른 주장을 했다. 보드리야르는 복사본과 원본의 관계가 역전된다고 주장했다.


차이의 극한이 외려 차이를 지우고 동일자의 무한증식으로 전락하는 이 극한현상을 일컫는 말이 바로 ‘내파’이다. 여기서 실재와 가상, 현실과 재현, 원본과 복제, 기의와 기표의 차이는 스스로 붕괴하고, 두 대립항들이 서로 구별되지 않고 하나로 결합된 거대한 시뮬라시옹의 세계가 탄생한다. ‘원본-복제-복제의 복제’의 연쇄고리 속에서 시뮬라크르(복제의 복제)는 그저 복제를 복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원본과 복제의 구별 자체를 의문에 부치고, 원본과 복제 사이의 일치(재현)라는 인식의 이상마저 무너뜨린다. 여기서 복제에 대한 원본의 우월적 지위는 서서히 무너진다
진중권, 『현대미학 강의』, 261-262


스니커즈의 시뮬라시옹

  독일군 스니커즈가 언제부터 유행했다. 원래 이 신발은 이름 그대로 과거 독일 군대 내부에서 보급품으로 나오던 신발이다. 그런데 갑자기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스니커즈의 유행은 다른 유행과는 다르다. 그것은 바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 유행하는 게 아니라 그 디자인의 스니커즈가 유행했다는 점이다. 보통 어떤 신발이 유행할 때, 어떤 디자인이 유행하기보다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이 유행한다. 하지만 독일군 스니커즈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구찌(Gucci)의 꿀벌스니커즈는 구찌 제품만이 원본이다. 그래서 다른 브랜드에서 똑같은 디자인으로 신발을 출시하면 그 신발은 가품 취급을 받거나 구찌를 "따라한 제품"이라는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꿀벌스니커즈가 유행한다면 구찌와는 다르지만 그것을 모티브로 한 제품이 많이 나올 것이며, 구찌 제품과 얼마나 유사하냐로 위계질서가 형성될 것이다. 즉, 구찌의 꿀벌 스니커즈가 하나의 원본으로써 비슷한 신발들의 이데아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다른 꿀벌 스니커즈들은 구찌의 제품과 '유사' 관계에 놓인다.


  하지만 독일군 스니커즈의 경우는 다르다. 원본이 없다. 원본이 있긴 한데, 그건 20세기에 군에서 보급되던 스니커즈이다. 지금은 다른 디자인의 신발이 보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따라서 독일군 스니커즈의 원본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독일군 스니커즈는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디자인이 유행하는 것이라 앞에서 언급했다. 따라서 굉장히 많은 브랜드가 이 제품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메종 마르지엘라(Masion Margiela), 아디다스(Adidas), 슈펜(Shoopen), 퓨마(Puma)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이 신발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브랜드마다 디자인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브랜드마다 조금 다르다. 물론 이것이 정석이다 말할 정도로 정형적인 디자인이 있긴 한데, 그것과 달라도 사람들은 독일군 스니커즈라 취급하고, 다른 제품들과 위계질서를 형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메종 마르지엘라나 아디다스나 혹은 다른 제3의 브랜드일지라도 모두 같은 독일군 스니커즈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것들은 앞에서 말한 꿀벌 스니커즈와 다르게 위계질서에 놓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원본의 부재'이다. 꿀벌 스니커즈는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이 유행을 이끌었기 때문에, 그 제품이 그 유행의 원본이자 주인공이다. 하지만 독일군 스니커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군대에서 보급되던 단종된 신발의 복각된 디자인이 유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본이라 할 특정 대상이 없다. 그 대상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독일군 스니커즈는 원본이 없기 때문에 '유사'의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모든 독일군 스니커즈가 복제품이기 때문에 그들은 원본 없이 복제품끼리만 관계 맺어진다. 푸코는 이러한 원본 없는 복제품들의 관계를 '상사'라고 했다.


  보드리야르는 복제품이 원본을 뛰어넘는 현상을 말했는데, 독일군 스니커즈의 경우가 그런 경우인 것 같다. 그리고 하나의 예시가 더 있다. 이번에도 신발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스(Vans)라는 브랜드의 제품 이야기이다. 반스는 '맹꽁이'라는 별칭을 가진 신발로 유명하다. 맹꽁이의 원래 모델명은 '슬립온'이다. 학창 시절에 실내화로 '맹꽁이실내화'라고 부르던 신발과 디자인이 비슷해서 그런 별칭을 얻었다. 그런데 어떤 패셔니스타가 그 브랜드의 신발을 신어서 화제가 되었다.

슬립온을 구겨신은 권지용 (지드래곤 팬사이트 넘버 G 출처)

  그는 바로 빅뱅의 지드래곤으로 알려진 권지용(1988~)이다. 저 신발을 신은 게 화제가 될만한지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권지용이 이렇게 신발을 구겨신은 사건은 굉장히 큰 파급력을 발휘했다. 그건 바로 반스가 권지용이 구겨서 신은 모양을 모티브로 신발을 출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슬리퍼처럼 발 뒤꿈치를 노출해서 마치 구겨 신은 것처럼 보이는 신발을 출시했다. 그 모델이 바로 반스의 '뮬'이다.


  뮬이 출시되기 전에, 권지용의 스니커즈는 그저 원본에서 약간 일탈한 복제품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 신발은 본질에 충실하게 못하게 뒤꿈치가 구겨졌다. 따라서 원본에 충실하지 못한 복제본이었다. 하지만, 뮬이라는 제품이 출시되면서 그 위계질서는 무너졌다. 그 복제본이 원본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더 이상 위계질서 안에 종속되어 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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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거한 사례들이 보드리야르가 의도한 시뮬라시옹이 맞는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사례들을 통해서 더 이상 원본과의 위계질서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의 위계 또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과는 별개로 명품이 너무 유행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지갑 사정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명품을 사는 건 전혀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한 2,30대 심지어 10대가 무리를 해서 그것들을 소비하는 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 신발이란 발을 보호하며, 편한 착용감을 주면 그 본질에 충실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본질보다 그것이 주는 아우라를 더 중시하게 되었다. 아우라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우라 또한 소비를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각자의 취향이 있고, 그것은 변화하고, 진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질보다 아우라가 앞 썬다는 것이다.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를 먼저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대체 신발이 자신의 목적을 충실히 하는데 별이나 동물이 왜 있어야 하며, 그 장식이 있다는 이유로 0이 하나 더 붙어야 할까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독일군 스니커즈로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암묵적으로 사람들은 값이 훨씬 비싼 메종 마르지엘라의 모델을 더 선호할 순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의 특정 모델이 유행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이 유행함으로써 원본 없는 복제 혹은 원본을 넘어선 복제가 이루어진다면 그 모델들 간의 위계질서는 무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델이 아니라 디자인이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가 형성된다면 작금의 사회문제인 젊은이들의 과소비가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대체 그 원본이 주는 느낌이 뭐길래 우리는 원본을 추구할까? 물건은 그것이 생겨난 이유인 본질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패딩은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고, 장갑은 손을 보호해 주는 것이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디자인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그 본질을 앞 쓰고, 그 물건을 사는 이유를 망각하게 만든다. 보드리야르가 맞았다. 결국 우리는 '필요'에 의해 소비하는 게 아니라 '차이'에 의해 소비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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