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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Oct 25. 2023

헤겔의 미학

Hegel's aethetics

철학자 G.W.F.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헤겔의 미학에 대해 논하기 전에, 나는 헤겔의 저서를 읽어보지 않았다. 『정신현상학』, 『미학 강의』 등 나는 그의 철학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다루는 헤겔의 사유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접한 것이 아니라 개론서나 2차 자료 등을 통해서 얻었다는 점을 유념해 주길 바란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일찍이 헤겔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헤겔에 대항하여 사고할 때조차 그것이 여전히 헤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헤겔은 서양철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자료를 접하지 않은 이유는 우선 관심분야가 아니었으며,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철학자들을 공부하느라 보지를 못했다.

  사르트르, 메를로퐁티와 같은 프랑스 실존주의자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상가로 3H를 말한다. 헤겔, 후설, 하이데거. 개인적으로 본인이 실존에 대한 글을 자주 쓰며,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럼에도 후설, 헤겔을 공부해보지 않은 건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헤겔 이론과 다른 이론들

  헤겔의 『미학』은 여러 면에서 칸트의 『판단력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칸트는 자연미가 예술미보다 우월함을 단언하는데 반해, 헤겔은 자연미가 존재하지만 미는 엄밀히 말해 예술적인 것이라 한다. 헤겔이 보기에 자연은 이념의 그림자일 뿐 아직 주관성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따라서 자연미의 결함에서 예술미의 필연성이 나온다고 본다. 절대정신의 그림자인 자연이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상기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플라톤적인 어조로 말하자면, 자연미는 보충할 수 없는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자체로는 열등하며 이데아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결함 있는 것을 다시 모방하는 현세계의 예술의 무가치에 대해 논했다. 하지만 헤겔은 자연의 결함을 예술이 보충해 줌으로써 그 필요성을 증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헤겔은 자연미와 예술미의 관계에 대해선 칸트와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예술의 역할에 대해선 플라톤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예술과 정신

   헤겔은 모든 미는 분명히 정신의 산물이라 말한다. 따라서 헤겔에게 예술미는 정신적인 것의 감각적인 표현이다. 헤겔에게 예술은 이상의 현현으로서 이해될 수 있고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은 정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활동이다. 인간이 예술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그가 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며, 즉자뿐만 아니라 대자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자란 우리가 확인하는 단일하고 직접적인 존재이다. 대자는 스스로 의식하는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기 작품에서 자신을 알아보며 의식한다.


  인간은 글쓰기를 통해서 그 자신의 사유 혹은 감정을 종이 위에 드러낸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할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며, 그 정신의 결과물이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글쓰기가 종료되는 순간 글쓴이는 자신의 글을 읽어본다. 자신의 서체에서도 글쓴이는 자기 자신을 알아보며, 그 내용은 가시적이지 않고 가지적인 무언가로서 자기 자신의 것임을 확인한다. 모든 인간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자유를 ‘객관화하고’ 실현함으로써 스스로와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끔 하므로 이미 예술가다. 그러므로 강가에서 물 수제비를 하는 어린아이는 수면에 그려지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감상하므로 이미 예술가일 것이다.


  칸트의 이론과 반대로 헤겔은 예술이 근본적으로 자연의 변형이기 때문에 자연의 모방일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술은 정신의 내용을 담은 감각적 현현이며, 정신적인 것의 감각화이자 또한 자연의 가상들의 변형, 즉 감각적인 것의 정신화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자연을 완전히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데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작품에 불가피하게 예술가의 주관이 도입된다. 헤겔은 예술의 주관성의 배제가 불가능함과 예술이 정신을 통한 대자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자연의 모방일 수 없다고 말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헤겔 미학에서, 풍경화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의 소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느끼는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현상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보고 느낀 정서 즉, 정신적인 것을 화폭에 남기는 것이다. 아무리 똑같은 풍경화라도 작가가 그가 지각한 현상을 그린 경우와 그 현상을 통해 느낀 정서를 표현한 경우는 다른 작품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복제했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것에 의한 정신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예술의 추상화

  "예술가는 “순수한 가상”을 잡기 위해, 추상화 작업을 통해 감각적 실재에서 구체적인 물질성을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벗겨낸다." 이 문장에서 말하는 추상화 작업은 추상화를 그리는 작업(Abstract Painting)이 아니라 예술이 추상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념이 감각적 형상과 관련을 맺는 양상에 따라 예술의 발전을 다시 세 가지 단계로 나눈다. 상징 예술, 고전 예술 그리고 낭만 예술로. 헤겔이 보기에 예술이 상징에서 낭만으로 갈수록 물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며,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상징 예술의 예시는 고대 동방과 이집트 조각과 같은 건축물이 있으며, 이념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서 물질적 매체에 압도당할 때 발생한다. 고전 예술은 그리스 시대의 그리스 조각을 예시로 볼 수 있으며, 이념이 구체 적에게 되어, 감각적 형태로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낭만 예술은 회화, 음악, 시, 기독교적 근대의 낭만적 예술과 같은 예시가 있다. 낭만 예술의 단계에서 이념은 감각적 매체 속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표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또한 예술은 바깥세계에서 서서히 인간의 정신세계로 옮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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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은 예술의 종말을 예언했다. 하지만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예술이 자취를 감춘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이 더 이상 진리가 생기는 결정적인 장소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헤겔이 말하는 예술 다음으로 진리가 생기는 결정적인 장소는 종교이며, 그다음은 철학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진리가 생기는 결정적인 장소가 철학을 넘어선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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