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자가 방황하는 자에게

당신은 방황할 용기가 있는가?

by 오경수
묵호의 한 카페에서 찍은 사진

학교 야산에서 담배피는 중학생,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하는 고등학생, 수업에 출석하지 않는 학생 등등을 우리는 방황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방황하는 학생들을 이해하는 척하면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심하게 바라보고 반항아로 취급한다. 물론 학생이 담배를 피고 수업에 출석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용기가 대단하지 않은가? 학교에서 담배를 피면 하교 후에 몰래 담배를 피는 것보다 걸리 확률이 무지 높다.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갔다가 담배냄새로 들킬 수도 있고, 학교에는 수 많은 눈과 cctv가 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담배를 핀다는 것은 대담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학생때는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되고,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면 인생이 끝인줄 알았다. 그래서 모두가 수업에 집중하고 밤 늦게까지 야자를 했다. 모두가 좋은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한심하고 실속 없는 사람으로 규정 되었다. 모두가 방황하려 하지 않고, 경주마처럼 본인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하지만 나는 방황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방황의 끝에는 큰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방황을 방향을 잃은 나침판처럼 쓸모없다고 하겠지만, 나는 방황을 통해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 더 솔직하게 생각하고,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방황하지 않는 자들은 그저 자기 주장없이 담론에 끌려가는 것은 아닐까? 방황을 하지 않는 다고 무조건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거다.


방황은 진짜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면 다른 목적지를 원할 수도 있고, 도달한 지점에 평생 머무를 수도 있다. 남들은 떠나지 못하는 이런 여행을 떠나는 방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 타자가 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동일자중에 스스로 타자가 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방황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방황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방황을 겪지 않은 자신이 더 열심히 살고 우월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황을 해보지 않은 자가 방황을 무시할 자격이 있을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방황해보지 않은 자는 제도나 구조를 의심을 용기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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