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이 묻는다.

Paul Gauguin did wonder.

by 오경수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1897)' -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

철학실천입문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위의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감상하는지 물어보셨다. 어떤 학생은 우중충한 색감에 대해 논했고, 누구는 우울해 보인다는 등 여러 감상평이 있었다. 사람마다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거시적 감정의 방향은 같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다르다는 것을 그 강의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과연 정답이 있을까? 그리고 인생을 사는 방법 또한 정답이 있을까? 우리는 다 인간이지만, 각기 다른 주체인데 보편적인 정답이나 정석이 존재하는 게 가능할까?


미술이 주로 종교적 역할로 쓰이던 시대까지 그려진 작품들을 볼 때는 감상을 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회화에서 어떤 여인의 머리 위에 12개의 별이 있고, 파란색 옷을 옷감이 들어간 옷을 입고 초승달이 알레고리로 등장한다면 그 여인은 성모 마리아(Virgen Maria)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낙타 가죽 옷, 쟁반 위 죽은 얼굴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처음 보는 그림이라도 그가 세례자 요한(San Giovanni Battista)이라는 것 또한 추측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종교화가 아니라서 감상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작가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정답이라 할 해석이 없다. 그럴 경우에는 작품을 만들 당시의 작가의 상황을 추적해서 작품을 해석한다. 이 작품에 대한 고갱의 설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이 그림을 그린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고갱은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었다. 원래 고갱은 금융가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며, 엄청난 수입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다. 고갱은 이러한 전성기에 주말마다 취미로 그림을 배웠다.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인상주의 작품도 몇 점 소장했다고 한다.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1830~1903)의 그림을 구매하던 중에 인연이 생겨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처음엔 사제지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예술적 교감을 하는 동료로 관계가 발전한다. 1882년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고갱은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서 그의 풍족한 생활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고갱은 전업 화가를 결심하며 가족의 곁을 떠난다. 그 후 고갱은 같이 살 예술가를 구하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와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서로 심하게 다투어 결국 따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고갱과의 다툼이 고흐가 스스로 귀를 자르게 하는 원인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그는 1889년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된 아시아 남태평양 이국적 풍물을 접하고 원시생활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어 타히티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타히티는 그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그가 살던 도시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또 다른 유럽의 섬이었다고 한다. 타히티에서 고갱은 피카소를 평범하게 만들 정도로 여성 편력이 굉장했다. 문란한 생활이 지속되고 그는 결국 매독에 걸리고, 그의 첫 번째 딸이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거기다 은행 빚도 있어 독촉까지 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이 작품을 그린 것을 감안해서 이 그림을 해석해봤다. 나는 고갱이 타히티에 와서 인생을 회고하며 현타를 느낀 감정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고 추측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은 고갱이 인생에 대해 고민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타히티에서의 원시생활을 꿈꾸며 성공을 기원했지만, 막상 타히티는 현대화된 도시였고, 성공보단 문란한 생활로 생긴 매독 그리고 딸의 죽음이 고갱에게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했다고 생각된다.


좌측 상단에 보이는 조각상은 죽음의 신으로 보인다. 또한 그 옆에 서있는 여인은 얼마 전에 죽은 고갱의 딸이라는 해석도 있다. 가운데에는 사과를 따는 한 남자가 있다. 종교에 관심이 많던 고갱을 고려하면 기독교 원죄의 상징인 선악과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럽에서 온 남자의 식민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인 것 같다. (그냥 추측이다. 고갱이 실제로 무슨 생각으로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림의 제목을 통해 고갱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길래 지금 글을 쓰고 있을까? 나는 어떤 존재길래 이 그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까?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관람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 그림의 해석은 아주 다양할 것으로 추측된다. 누군가는 가운데 사과를 따는 남성을 경계로 좌측은 죽음을 의미하고, 우측은 삶을 의미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제국주의에 의한 약탈로 패전국이 된 것 같은 분위기가 된 타히티를 느낄 수도 있다. 결코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관람자가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거나 성찰을 하면 그것이 답이 아닐까?


시릴 모라나와 에릭 우댕의 공동저서인 "예술철학(2013)"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기능이 배설(purgation)과 정화(purification)이라고 주장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배설하고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받은 대중은 영혼을 정화받는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는 것 같다. 그럼 우리는 고갱의 감정의 배설물을 보고 어떻게 스스로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을까? 나는 제목이 던지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 영혼의 정화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당신의 영혼은 고갱의 작품에 의해 정화된 것이다.



참고서적

허세미술관 - iAn

예술철학 - 시릴 모라나, 에릭 우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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