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의 인생을 온전히 나의 선택들로 채울 수 있게 하셨다.
자식을 낳고 보니 자식의 선택을 온전히 믿고 지지하고 따라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식의 선택 앞에 늘 부모의 바람과 욕심이 섞여 들어간다.
하지만 아빠는 나의 인생을 온전히 나의 선택들로 채울 수 있게 하셨다.
내가 어린 시절 컴보이라는 게임기가 엄청 인기였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하루 종일 게임기를 붙잡고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게임기를 사 준 분이었다. 학교 다녀와서 게임만 하는 딸을 보면 ‘왜 저 게임기를 사줬을까’하며 한숨이 나올 법도 한데, 아빠는 늘 나와 같이 게임을 해줬다. 아빠는 단 한 번도 내게 ‘이제 그만해라. 들어가서 공부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와 함께 게임을 하며 나에게 모든 게임의 기술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나는 아빠가 사 준 게임 팩의 모든 게임을 끝판왕까지 다 깨고서야 게임을 멈췄다.
대학에 가서 나는 하루가 멀다고 술을 마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갔는데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술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낭만이고 추억이라 믿고 살았다. 그 날도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하고 수업을 빠졌다. 학교도 안 가고 숙취에 뒹굴뒹굴하는 딸이 밉고 한심할 법도 한데 아빠는 조용히 엄마에게 한마디 하고 나가셨다. “주이 해장국 끓여줘. 저러다 속 버린다.”
가끔 안아달라, 업어달라고 하는 첫째를 다그치며 나는 “이제 걷자. 엄마도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데 지금의 첫째보다 더 컸던 그 시절 나는 가족여행 후 힘이 들 때면 아빠 등에 업혀 한 발짝도 걷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하면, 아빠는 그저 묵묵히 나를 안아주고 업어주셨다.
성인이 돼서 아빠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빠는 왜 나한테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안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게임만 할 때도, 성적이 곤두박질칠 때도 왜 잔소리 한 번 안 했어? 안 답답했어? 대학 가서 그렇게 술 마시고 다닐 때도 왜 화 한 번 안 냈어? 내가 한심해 보이지 않았어? 그때 아빠는 이렇게 말해주셨다.
“주이야, 아빠는 그 모든 게 너의 인생이기 때문에 그저 지켜봤다. 너의 인생에 개입해 너의 삶과 선택을 흔들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든 선택은 네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야기할 필요 없이 부모는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너의 삶은 네가 선택한 결정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존중해 주고자 했다. 그리고 너는 단 한 번도 내가 생각한 선을 넘은 적이 없다. 젊은 시절 그 정도도 방황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느냐. 선을 넘었다면 제지하고 혼도 냈겠지. 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구나.”
자식을 낳고 보니 자식의 선택을 온전히 믿고 지지하고 따라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식의 선택 앞에 늘 부모의 바람과 욕심이 섞여 들어간다. 나는 자라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빠에게 혼난 적이 없다.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아빠는 내 인생의 결정들 앞에서 나에게 지시하거나 반대한 적이 없다. 나는 늘 그렇게 지지받고 사랑만 받고 컸다. 자식이 생기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아빠는 나의 37년을 온전히 나의 선택들로 채울 수 있게 하셨다. 아빠는 그런 분이었다. 늘 나를 믿어주는 분, 언제나 내 편인 분, 방황도 부족함도 묵묵히 지켜봐 주는 분, 그저 나의 건강과 안위만을 걱정해주던 분. 그런 아빠가 떠났다. 더 이상은 고통이 없는 곳으로 힘들지 않은 곳으로 아빠는 그곳에서 편안히 쉬고 계실 텐데. 내 옆에 더 이상 나의 절대적 지지자였던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남은 자의 아쉬움에 아빠가 보고 싶다.
[<그립습니다>나의 모든 선택 응원해 준 아빠… 그 큰 사랑 이젠 알아요, 문화일보 2020.06.01, 김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