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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Apr 10. 2024

그래야 다 같이 나누어 먹잖니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글 채인선/그림 이억배

나는 손이 작다. 음식을 해도 딱 계량해서 고 만큼만 만든다. 남는 것을 싫어한다.

아내는 손이 크다. 남으면 남았지 모자란 것을 마뜩잖아한다. 큼직큼직하게 이것도 저것도 푸짐하게 담아낸다.


나는 여행을 가면 선물을 딱 필요한 개수만 산다. 아주 특별한 이가 아니면 선물 주는 데에도 인색하다.

아내는 수많은 선물을 준비한다. 개수도 가지가지이다. 누구한테 줄 것인지 인식도 없는 것 같다. 많으면 다 줄 데가 있다고 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나는 1인분을 끼깔나게 만든다. 3인분을 만들려고 하면 대책이 없다. 냄비를 3개 써야 할 판이다.

아내는 1인분을 만들려고 하면 3인분이 된다. 양 조절을 잘 못하겠다고 때론 푸념한다.


나는 물건을 살 때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

아내는 이것도 사용해 보고 저것도 시도해 보며 여러 가지를 풍성하게 함께 즐기는 편이다.



일부의 예시지만 예상하다시피 아내와 나는 양 극단이다 싶게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아니 도대체 아직도 헤어지지 않고 살고 있는 이유가 뭐유?’ 라고 누가 물어볼 수 있겠지만 인생의 선배님들은 잘 알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는 것이 아니란 것을, 그래서 이 조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아내를 통해 인생에서 ‘인간은 완벽하게 다 다르다’ 라는 철학적 명제를 확실하게 배웠다. 만약 둘의 성향이 비슷하고 두리뭉실하게 맞았다면 평생 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편협하게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완벽히 다른 연인을 만났다는 것은 거의 충격 요법과도 같아서, 사람 사이의 진리를 뇌에다 대고 때려 박아 넣어 준 형국이다.

이 세계 어느 누구도 비슷함이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연후에는 기본적으로 Respect 하는 법을 배운다. 살아가며 치이는 이토록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싫다는 마음이 일기 전에 ‘저 사람은 이 정도로 다른가? 대단하군.’ 하고 감탄이 먼저 일게 된다. 누군가는 이것이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나 자신이 ‘인간과 인간 사이란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도와준 아내가 극단적인 대척점에서 함께 하고 있다. 빈말이 아닌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동안의 거센 파도를 얘기하면 사족이 될 것이다. 잘도 파도에 수몰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살아왔고나 싶기도 하고, 나름 한 가지는 깨달았구나 싶어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게 된다. 나처럼 에고가 강한 인간의 억지를 그 반대편에서 받아주었을 아내의 마음을 역지사지해 보게 된다.




이 그림책은 아내를 보는 것 같다.

이 손 큰 할머니는 도무지 나와는 완벽하게 결이 다르다. 그리고 그 결의 반대쪽 끝은 동화답게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손 큰 할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보여 주는 도량은 웬 만치 그동안 할머니를 알아왔다는 숲 속의 동물들도 깜짝 놀랄 지경이니 말이다.

그림책 세상은 설날이 다가와 손 큰 할머니와 함께 동물들이 만두를 빚을 준비로 분주하기만 하다. 호랑이, 꿩, 토끼, 뱀, 오소리, 곰, 다람쥐, 강아쥐, 멧돼지 숲 속 동물들이 모두 몰려들어 할머니 부엌간을 기웃거린다.

“할머니, 이번 설날에도 만두 많이 만드실 거죠?”

“물론이지, 그래야 다 같이 나누어 먹잖니.”

꺼내고 꺼내 온 재료들로 만들어낸 만두소는 어마어마하여, 헛간지붕을 덮는 함지박을 가져와 삽으로 버무려야 할 정도이다. 엄청나게 만든 만두소에 맞게 그만큼의 만두피 반죽이 필요하겠네. 밤새 부풀어 오른 반죽은 방문턱을 넘어 툇마루를 지나고 마당을 지나 울타리 밖 언덕으로 한없이 밀려나간다.

이제 함께 만두를 빚으며 축제를 즐길 시간이 왔다.


만두 만두 설날 만두

아주 아주 맛난 만두

숲 속 동물 모두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

한 소쿠리 싸 주고도 남아

일 년 내내 사시사철

냉장고에 꽉꽉 담아

배고플 때 손님 올 때

한 개 한 개 꺼내 먹는

손 큰 할머니 설날 만두


여기서 내 인생의 지점은 2행 ‘아주 아주 맛난 만두’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나 혼자 맛난 만두를 감별할 능력 정도는 있는 것이다.

아내의 지점은 9행 ‘배고플 때 손님 올 때 한 개 한 개 꺼내 먹는’ 지점까지 확장된다고 봐야겠다. 큼지막하게 벌려 모든 이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아 배고픈 이, 손님 올 때 꺼내 줄 수 있는 지점 말이다.

성향은 학습은 하되 바뀌지는 않는다. 지금도 그 경지를 머리로는 이해하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남는 음식물 쓰레기는 어떻게 하며, 다 먹지도 못하는 낭비는 어떡하냐고, 각자 먹을 만치만 준비해야지 하며 쓸데없는 도덕심을 부려본다. 반면 그림책 속은 축제가 끝없이 펼쳐진다. 거대한 산 같은 만두소는 함께 하며 조금씩 줄어들고, 서로 다르게 빚는 만두 형태는 재미있기만 하다. 거대하게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만두는 함께 나눠 먹기에 더 맛있을 뿐이다. 여기 모두가 둥게둥게 모여 가마솥에서 만두가 익는 저녁, 섣달그믐날 밤도 그만큼의 풍성함으로 서서히 익어간다.

그 마력에 서서히 끌려들어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림책을 읽어 내려가며 아내와 함께 한 시간들을 돌아본다.

이제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조금씩 상대 지점의 좋은 것을 가져오기도 하는 깜냥을 배운 것 같다. 나 만을 향해 있던 시각을 조금은 더 밖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여행지에서는 구매할 선물을 오히려 아내에게 좀 더 제안하기도 한다. 아내로서는 냉장고에서 시들어 버리는 물건이 확연히 줄어들고, 물건을 구매할 때 차선으로 여러 개보다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계획의 달인인 아내는 무계획이 주는 느슨함을 즐길 여유를 알게 되었고, 나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좀 더 싹튼 것 같다. 부부가 닮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를 이제는 알게 된다.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의 다름을 알아가고 흡수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의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그림책이 소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다. 그림책을 통해 느끼고 얘기하고 싶던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그런 것이야말로 너에게 좋은 책 아닌가?’ 누가 그렇게 반문하는 듯하다.

맞다. 그래서 본 챕터가 탄생했다. 글쓴이가 추천하지는 않는 그림책 말이다.


“흠, 할머니 말이야. 거 그렇게 음식을 많이 하시면….”




<별책 부록>

배불리 먹는 만두로 모두가 행복한 설날, 축제는 다음날 까지도 연장된다. 숲 속의 동물들은 할머니 마당에서 흥겨운 연휴를 이어가고 있다. 아! 이 풍성한 풍경, 이 마음을 담아 음악을 선곡하면서 이만 마

…칠리가 없다.

그간 양 극단을 언급해 왔으니 이 그림책을 좀 더 풍성하게 해 주려면 다른 이야기를 충격 요법으로 가져오는 건 어떨까.

뭐, 거의 망발인 것 같다만.



Vincent Gallo [When] 2001년 <Yes, I’m Lonely>

https://warprecords.bandcamp.com/album/when?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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