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 고미 타로 / 이종화 옮김
집 한 구석에는 몇 장의 씨디들을 모아놓은 선반이 있는데, 으레 그러하듯이 좋아하는 앨범자켓 같은 경우는 전면으로 전시하듯 드러내어 놓곤 한다.
나로서는 김영세 디자이너가 LP처럼 디자인한 김민기 아저씨 엔솔로지 CD반이 그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작은 몸짓 같은 것이겠지. 그리고 그 옆에는 생뚱맞게도 그림책이 하나 전면으로 전시가 되어 있는데 오늘 얘기하는 고미 타로 아저씨의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이 그것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수많은 음악 CD들을 제치고 전면 얼굴을 드러내도록 간택받았단 말인가. 악어도 깜짝 놀라고 치과 의사도 깜짝 놀랐지만, 나는 머리가 쭈삣 솟을 정도로 화들짝 놀랐으니 그럴 만하다. 그림책이란 어른이 보는 것이구나 라는 명제를 최초로 알게 해 준 작품이다. 이후 그림책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달라졌으며, 삶에서 새로운 즐길 거리를 알게 되었으니 그 영향력은 작지 않겠다.
무심히 넘기던 내가 충격에 빠지게 된 건 그림책을 읽은 지 채 10초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림책은 밀림에서 놀고 있던 우울한 표정의 악어가 썩은 이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작한다.
‘더 놀고 싶지만 가야만 해.’
렌치와 드릴을 들고 한참 과학상자에 심취하고 있던 멋진 콧수염의 치과 의사는 문 밖에 나타난 손님의 실루엣에 아쉬움을 곱씹는다.
‘더 놀고 싶지만 가야만 해.’
호들갑일 수 있겠지만, 이 문장을 읽어내려갔을 때 나는 그림책이 천지개벽하는 줄 알았다.
‘우와아아악. 뭐 이 따위 능청이 다 있어. 이 아저씨. 유아 그림책에다 짐짓 모르는 척 인생의 근본을 스리슬쩍 집어넣고 있어!’
그림책은 동일한 문장을 악어의 시점과, 치과 의사의 시점으로 반복한다. 서로가 다른 상황에서 같은 문장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리듬감을 생각해 보라. 아이와 함께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읽어 내려가매 눈앞에 펼쳐지는 전혀 다른 상황들 말이다. 이 당혹스러운 시점은 2인조 만담콤비의 유머와도 같이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을 위해 앞으로 차곡차곡 나아가는 이들, 마침내 둘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러니까 이를 닦자 이를 닦아. ‘그러니까 이를 닦자 이를 닦아.’
뭐? 설마. 에잉….. 이럴 턱이 없지.
그런 것이다. 시치미도 이런 시치미가 없다. 은근슬쩍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구는 능청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창 전성기 때 개그콘서트 <웅이 아버지>를 보는 듯한 아찔함에 즐거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우아아아악 또 미쳐 날뛰는 아빠 괴수의 울부짖음에 아이는 좋다고 난리를 치고, 화들짝 놀란 아내는 엉겁결에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수소문한다.
고미 다로의 그림책은 인기가 상당하다. 작품수도 수이지만 한국에서 제일 많이 번역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림책을 보는 세대가 다양할 것 같다는 점이다.
유아들도 즐겨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담백하고 귀여운 캐릭터들, 짧은 글과 리듬감을 타는 운율, 놀이처럼 읽게 되는 내용들 말이다.
다시 말하면 어른들도 즐겨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미니멀하면서도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그림체, 행간에 도사린 무지무지한 여백, 탁 하고 감탄을 주는 재미들 말이다.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이는 작가 자신이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지 자기 자신에게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그는 불특정다수를 향해 선보였고, 그 과녁에 걸린 이들 중에는 유아도 있고, 아이도 있고, 다 자란 어른에 할아버지까지 있는 격이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얻어걸리는 것 같은 이 천연덕스러움 말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것은 정확히 본질을 꿰뚫는 시각이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에는 오히려 동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교훈을 주려는 이야기, 감동을 떠 먹여 줄려는 이야기, 은근히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속이 너무 보여 재미가 없다. 고미 타로의 그림책이 순수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의 그림책은 단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에게 즐거운 재미.’
즐겁게 산다는 것은 전인류적인 보편타당성을 담보로 하고 있으니, 그 재미는 누구에게나 와닿을 것이다. 우아한 보디블로우가 아찔하게 작열하는 순간.
놀자 안 놀아 놀자 안 놀아 놀자 안 놀아 놀자 안 놀아 그럼 이것은? <나하고 놀자>
비켜, 비켜, 비켜, 비켜, 비켜, 비켜, 비켜, 그럼 비킬까? <저리 비켜>
서른세 가지 쓸모없는 삶의 혜안에 과연 고개가 끄덕여지는군. <똑똑하게 사는 법>
단순히 글로 설명해서 느낌이 올 수준이 아니겠지만 여타 그림책의 스토리 중심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왜 그의 그림책이 독특한 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부터, 어떻게 하면 매사 재미있을까 궁리하는 듯한 개구쟁이의 뉘앙스까지.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작품을 쓴다, 아이를 위해서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성공한다는 과학적 증명도 없는데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림은 잘 그리면 안 된다고, 실례라고.
조금 전에도 제 책 읽고 ‘너무 재밌다’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명작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랑 맞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냥 큰다. 키운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 쭉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캐릭터가 재미있어야 좋은 책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왔던 그의 단면이었는데 아마 내가 다듬어 왔던 가치관과 그의 재미가 서로 호응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의 그림책을 읽는다는 건 그런 은근한 유머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멋진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과 같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381438?sid=001
이 자아가 강한 그림책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분명 호도, 불호도 공존하리라.
다만. 공업디자인으로 연마한 그림은 사물에 정확한 성격을 부여해 내고 있고, 그 속의 캐릭터는 저절로 움직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나는 이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뿐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인 재미가 다른 누군가에게로 흘러 나가는 형국이다.
그리고 ‘체’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즐기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별책 부록>
때론 그의 그림책은 쿨내 진동하는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기도 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심상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자기장이 독특함을 부여한다.
그리고 음악에서 이런 부분을 생각할 때면 항상 어어부 밴드가 떠오른다. 농담인지 진실인지 유머인지 거짓인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놓고 선택의 강박을 버리게 만드는.
여기 흥겨우면서도 구슬픈 왈츠에 맞추어 돼지가 밭을 가는 전설이 있다 하니, 뭔 소린가 듣고 싶지 않을 지 모르지만 또 다른 단면처럼 삽입해 본다.
어어부 밴드 [도시락 특공대] 1997년 <밭 가는 돼지>
https://youtu.be/Sf0BiSNBCrs?si=dgGlKB1b50AvpY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