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목표?
EP.09 이래도 저래도 한 판의 달리기 - 달리기 목표?
무리하지 마시라, 매일 뛰지 않아도 된다, 최대한 느리게 달리시라, 거리보다는 시간에 집중하시라, 계속 그런 얘기만 하며 강한 채찍질,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을 누르도록 지난 에피소드를 써 왔다. 그렇지만 달리는 몸은 시나브로 어느 수준에 도달할 것이고 누구나 어떤 목표 란 게 생기게 된다.
사실 달리기는 어떻게 보면 하루하루 달렸던 순간들이 다 목표였던 것 같다. 어제보다 10초를 더 달리는 것도 목표였고, 오늘은 덜 헐떡거리도록 달려봐야지 다짐도 목표였고, 오늘은 복식호흡을 연습해 봐야지 하는 것도 다 작은 목표였다.
목표는 작게 세울수록 좋다고 하던가? 나는 목표를 세운 적 없는데 은연중에 돌아보니 그런 작은 마음들은 목표였고 지나온 시간이었더라. 그리고 처음 달린 상태와 비교해 보면 대견하게도 나는 이만큼 와 있다.
목표라고 하는 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게 어느 정도 몸에 익숙해지면 공식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진다.
거의 반드시가 아니겠는가. 공식 대회에서 달려 보고 싶다는.
여기 전국 마라톤 대회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http://www.roadrun.co.kr/schedule/list.php
난 최초 여기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랬다. 아니 대한민국에는 달리는 사람 밖에 없나?
세계에서 보면 작은 나라인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대회가 실시간으로 준비 중에 있다고? 코로나 전에는 사실 더 했다. 지금 이 시각 10월 초부터 12월까지 전국 준비 중인 대회만 339개가 등록되어 있다.
미친 거 아냐? 이렇게 우리는 달리는 민족이었다고?
그러하다. 아마 당신도 놀랐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을 달리는 사람들 속에 존재한다.
거의 대다수 마라톤 대회에는 친절하게도 5km라는 단거리 마라톤이 존재한다. 이것은 처음 달려보는 이들이 가장 손쉽게 시도를 해보기에는 무리가 없는 유혹이다.
어느 정도 되면 5km를 도전해 볼 수 있을까? 사실 무리하면 지금도 당신은 5km를 달릴 수 있다. 장담한다. 공식대회란 뿌듯함의 버프가 온몸을 감쌀 것 아닌가.
그런데 달린 후가 문제이다.
나는 마라톤 대회 후 부상을 입는다거나, 며칠을 앓는다거나, 죽을 둥 살 둥 해서 도착하는 달리기는 지양하고 싶다. 결국 상처뿐인 해냈다는 쓰린 달콤함은 있겠지만 그것은 제대로 통과해 낸 행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달리기는 어떤 코스를 달리더라도 결승점을 통과한 후 약한 가쁜 숨 정도 뱉아내면서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분 좋은 느낌을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이 또한 달리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페이스보다 더 느리게 달리며 그 속도와 느낌을 유지한 채 결승점을 통과하면 문제없다.
그럼 5km 정도를 그런 정도의 마음으로 달리려면 어느 정도면 될까? 30분 뛰실 수 있는 분들은 사실 5km 레벨은 이미 넘어서셨다고 생각한다.
3km를 뛰실 수 있으면 5km는 무조건 뛰실 수 있으며, 7km를 뛰실 수 있으면 10km 달리기는 무조건 뛰실 수 있다. 20km는 뭐… 14km 뛰실 수 있으면 무조건 뛰시겠지?
처음 1km는 모두가 으싸으싸 시작하는 정신없음에 그냥 지나가고, 마지막 1km는 모두가 응원하는 줄기를 뚫고 지나가는 에너지에 또 힘 받기 때문에 앞뒤 2km는 없애도 좋다.
개인적으로 한 번은 5km 정도로 간단히 공식대회에 참석해 보시는 것도 흥분되는 경험일 것 같다.
초심자로 시작해 시작 대열에서 약하게 긴장 상태로 함께 으싸으싸,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거리를 달리며, 무리하지 마, 흥분하지 마 다독이기도 하며,
계속 내 몸에 신경 쓰고, 혹여나 어디가 잘못되는 데는 없나 살펴보며,
의외로 잘 달리고 있는 내 플로우에 감탄하며,
혹은 처음 욕심부린 오버 페이스가 끝까지 발목을 잡기도 하며,
사람들의 분주함 속에서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하는데,
우와아아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아이의 환호, 응원과 함박웃음.
어느 화창한 주말 오전, 그 엄마나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결승전에서 기다리고 있는 풍경 말이다. 아이와 우리 여보는 얼마나 자랑스럽게 당신을 볼 지.
당신이 홀로 달린다면, 내 안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자랑스럽게 볼지.
나는 달리기 대회를 그닥 나가지는 않는다. 하프를 뛸 수 있다는 것을 기분 좋게 체험한 정도면 충분했고, 이후 거리와 시간은 나와는 별로 관계없는 물질 같아 보였다. 홀로 느리게 달리며 나를 바라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고, 트레일 러닝의 매력에 심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도 체험을 한 번은 해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고, 짧은 거리를 공식 대회에서 테스트해 보는 것은 적극 권해 보고 싶다. 한번 정도는 말이다.
앞서 얘기한 대회 달리기도 있지만 그것 말고도 머리를 좀 더 깨어볼까?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나 만을 위한 즐거운 달리기 꿈을 꾸어 보면 어떨까?
당신이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앞으로 러닝화가 기본 공항 착장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맨하튼에 갔다면 센트럴 파크를 달리는 것을 꿈으로 잡는 것이다.
남들은 보디 프로필 사진을 찍겠지만, 자신은 가장 아름다운 노을색을 받으며 달리는 컷 씬을 찍어보는 것으로.
즐겁게 읽었던 다카기 나오코의 여러 만화 중 달리기에 대한 만화책이 세권이나 있다. [마라톤1년차] [마라톤2년차] [해외 마라톤 Run Run!]이 그것인데, 그중 하와이 마라톤을 참가하는 에피소드는 그녀만의 꿈이었던 것이다.
션의 선한 영향력에 고개 끄덕이며, 매년 815런에 동참하여 독립유공자 후손 기부에 동참하겠다거나
달리기 과정에 에피소드와 그림까지 재미있게 곁들여 자신만의 책으로 내어 볼 생각을 해 본다거나
그동안 아껴두었던 장롱 속 소중한 토끼옷을 입고 뛰어보는 꿈을 실현해 본다거나
세상의 수많은 내가 만들어낸 기발한 꿈으로 자신만의 달리기를 완성해 나간다면 그만큼 멋진 일은 없을 걸.
자신만의 바둑을 둔다는 말이 있다.
자신만의 달리기를 하는 당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