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하라

눈을 가리고 있는 정의의 여신과 눈을 뜨고 있는 정의의 여신

by 날개

'정의'(Justice)의 상징이라고 하면 우리는 한 손에는 검(sword; 권력)을 한 손에는 저울(scales; 공정성)을 든 여신을 떠올린다. 현대의 정의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테미스'(Themis), '디케'(Dike) '유스티티아'(Iustitia, Justitia)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엄밀하게는 테미스와 디케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와 질서의 여신이고, 유스티티아는 로마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이라고 한다. 결국, 현대의 정의의 여신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이미지와 도상학(Iconography)이 혼합된 것으로, 테미스와 유스티티아의 혼합체라고 일반적으로 보는 것 같다.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정의의 여신상 관한 미국연방대법원의 설명이다.

정의의 여신은 테미스와 유스티티아의 혼합체입니다. 현재 정의와 관련된 눈가리개는 아마도 16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워싱턴 D.C.의 일부 조각상에서는 정의의 여신이 저울, 눈가리개, 그리고 칼을 들고 있습니다. 한 조각상에서는 칼이 칼집에 꽂혀 있지만, 시선으로 악과 싸우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포함하여 거의 전 세계 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뿐만 아니라,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도 고대 정의의 여신들과 매우 흡사하다. 정의를 의인화하는 방법은 그 시대 작가들의 필요와 신념에 따라 변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리나라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주로 눈을 뜨고 있는데, 대법원에 설치돼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전통 한복을 입고 앉은 자세로, 오른손에는 칼 대신 법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법원(Court)은 ‘Courts of Justice'로 불리고, 법원 건물에는 정의의 여신이 상주하며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거나 형평성과 공정성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부는 법률 체계의 운영을 감독하기 위해 '법무부'(Deparment of Justice)를 설립하고, 범죄자들은 '정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brought to Justice). 홍콩대 명예교수 Raymond Wacks 교수는 이렇듯 정의와 동일시되는 법이, 때로는 정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주의를 강조한다. 예컨대, 나치 독일이나 인종 차별 정책을 시행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법의 불의의 도구로 전락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그는 물론 선량한 사회에서는 법이 정의를 지향할 수는 있으나,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인가? 그는 이 복잡한 주제에 대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즉, 정의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정적 정의’(corrective justice; 법원이 잘못한자를 처벌하는 것)와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 법을 통해 각 개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정당히 부여하는 것)을 구분했다. 이어 로마 시대에 좀 더 명확한 원칙이 제시되는데, 유스티아누스 황제(재위 482-565) 명령에 따라 성문화된 민법 체계인 'Corpus Juris Civilis'에서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부여하는 원칙'(the constant and perpetual wish to give everyone that which they deserve)으로 정의된다. Wacks 교수는 각 개인이 일관되고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하고,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정의의 개념이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13번째 포스팅에서 살펴보았던 정의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공정, 평등, 공평의 삼각관계가 표출된다. Wacks 교수도 정의의 핵심 요소로서 공정성, 즉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저울의 상징으로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평등의 개념은 정의 개념을 찾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긴 하지만,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구분하는 객관적인 근거에 대한 사회구성원들 간의 합의의 난점을 지적한다. '개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정당한 것'의 기준도 다른 외부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잘못 적용되는 경우 오히려 불의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즉, 개개인 간의 정의는 사회와 정치 제도를 통해 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는 사회 정의만큼이나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어렵다는 것이다.


정의를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공정이나 공평이나 평등의 개념도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어떻게든 그 기준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일까? 법철학자들도 정의에 대한 견해가 각기 다르다. 대표적으로 포스너존 롤스의 대립되는 이론과 사상에 관해, 포스팅을 통해 개괄적으로 살펴본 바가 있었다. 아무튼, 현대적 정의론은 어떻게 하면 사회적 부를 공정하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하여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정의를 규명하는 철학은 규제의 설계와 입법, 법 해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영원히 탐구해야 할 과제이다(constant and perpetual wish!).

좌 : Court of Final Appeal, Hong Kong / 우 : 대한민국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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