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의 과잉'은 이성으로 절제한다고 한다 손치더라도, '생각의 과잉'(overthinking)은 무엇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생각의 과잉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연쇄적 의식순환의 '늪'(swamp)과도 같다.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필요한' 생각을 끊어내지 못해, 몸이 원하는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부정적으로 에너지를 소진할 때도 많다.
흄의 생각대로라면, 노예일 뿐인 이성이 정념(주인)의 명령 없이 '폭주'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한 철학자 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냥, 당장이라도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복잡한 사유를 멈추고 온전히 몸의 오감에 집중하며, 햇볕을 쬐며 꾸벅꾸벅 조는 돼지처럼 평화롭기를 갈망한다.
인간에게 '생각의 과잉'은 충동적 정념과 함께 삶의 고통의 두 가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생각 과잉은 불안, 후회, 우울 등의 부정적 정념에서 비롯된 생각인 경우가 많고, 통제 불가능한 과거, 미래,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확장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를 통해 지적 통찰력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깊이를 제공하는 '숙고'(deliberation)와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생각의 순환적 사고인 생각 과잉은, 스스로 생각의 늪에 빠져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고의 정체를 가져오고, 과도한 분석으로 인해 의지력을 소진시키는 등 실행마비(paralysis by analysis)를 야기한다. 또한, 불안, 우유부단, 반추(rumination), 기회상실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미 '생각하는 갈대'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각의 작동을 인위적으로 멈추기 힘들다. 그래서 잘못된 방향으로 과열된 이성을 정상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스위치를 'OFF' 시키는 방법보다는 안에서 맴도는 에너지의 방향을 '앞으로 나아가는 목표'를 향해 돌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글쓰기나 음악, 미술 등의 예술처럼 구체적이고 능동적이며 몰입할 수 있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하여 '창조적 성취'로 승화시키는 것, 즉 '생각의 순환'을 재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고 보존하며 향상하는 근본적인 노력, 즉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코나투스"(conatus)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하여 생각하거나, 억지로 생각을 멈추려는 것도 이성의 작동인 '생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생각 과잉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또 다른 생각을 낳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생각을 어떻게 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나 행위 대신, 인위적인 판단과 집착을 내려놓고 소박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현재 상태에서 자신의 오감에 집중하고, 언어적인 생각을 내려놓은 채 빈 명상을 하며, 몸을 쓰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활동이나 목표 지향적인 행위의 실행에 몰두할 때, 이성의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소진시키거나 전환시켜 잡념이 발생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인간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은 생각의 과잉을 증폭시키는 외부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철학자들은 그러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은둔'을 제안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을 버릴 수 없다. 진정한 내적 고요(사유의 평온)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반응의 속도를 늦추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서 온다. 존재의 힘을 증가시키는 관계에 대하여는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만족을 얻는 것이 더 좋다.
시인 정현종(1939)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사유한 끝에, 섬세하고 사려 깊은 '환대'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에 나선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