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생태계 규제의 미래
인류의 커뮤니케이션은 늘 기술의 진화와 함께 형태를 바꾸어왔다.
대량(mass) 인쇄 기술을 통해 신문이 정보를 문자로 고정시키며 ‘사실’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만든 시절을 지나, 라디오는 청각을, TV는 시각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결정적인 임계점은 이 모든 매체를 하나로 엮어 놓았다. 기술이 매체를 통합할 때마다 인간은 새로운 감각을 배우고, 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왔다.
21세기 초반, 스마트폰과 플랫폼의 결합은 정보의 소비 단위를 ‘개인화’했다. 알고리즘은 각자의 취향과 시간을 맞춤형으로 편집했고, 이로써 뉴스·음악·드라마·광고의 구분은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숏폼의 확산은 그 흐름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도 있다. 숏폼은 신문이 남긴 논리, 라디오가 남긴 리듬, TV가 남긴 이미지, 그리고 인터넷이 남긴 속도를 하나의 포맷 안에 압축해 놓은 결과물이다. 그것은 정보 전달의 종착점이 아니라, 감각의 통합체이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표현 단위이다.
인간은 언제나 기술에 맞춰 자신의 인지 구조를 조정해왔는데, 숏폼은 인간이 선택한 또 하나의 언어인 동시에 감정과 의미가 교차하는 새로운 문법일 수 있다. 다만 이 문법의 생산과 배분이 소수의 거대 플랫폼에 의해 통제될 때, 구조적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법과 규제가 다시 존재 이유를 얻는다.
기존의 미디어법은 표현의 자유와 공공성의 균형을, 경쟁법은 시장의 공정성과 혁신의 균형을 다루어왔다. 그러나 AI와 플랫폼이 결합된 미디어 환경에서는 두 법의 경계가 의미를 잃는다. 뉴스, 광고, 콘텐츠, 데이터가 하나의 알고리즘 속에서 순환하는 시대에는, 시장지배력과 여론지배력, 산업규제와 표현규제가 동일한 축 위에서 움직인다. 이제 규제는 매체를 기준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 흐름의 설계자와 통제자'가 누구 인지를 기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예컨대, AI가 숏폼 영상을 제작·추천·배포하는 과정은 단순한 미디어 행위가 아니라, 이용자의 감정과 주의력을 자원으로 삼는 경제적 행위이다. 이는 경쟁의 문제이자 표현의 문제이며 동시에 산업정책의 문제이다. 따라서, 향후 규제의 패러다임은 미디어법·경쟁법·산업정책의 융합적 접근과 조화는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규제와 진흥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각각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던 시대는 빨리 끝내야 한다.
미래의 규제는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숏폼을 비롯한 초단위 컨텐츠의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억제가 아니라 ‘공정한 감각의 진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감각을 진화시킬 자유를 가지되, 그 과정이 특정 알고리즘의 코드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기술문명 속에서 규제가 해야할 역할이다.
AI가 결합된 미디어 생태계는 머지않아 개인의 감정, 사고, 소비 행태를 실시간으로 읽고 예측하며, 맞춤형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세계에서는 ‘시장 경쟁’과 ‘여론 경쟁’, ‘컨텐츠 산업’과 ‘데이터 산업’이 완전히 뒤섞인다. 결국 규제의 초점은 매체의 형식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신문에서 시작된 정보의 시대가 숏폼으로 수렴하는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는 지점에 서 있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압도했지만, 인간은 그 기술을 통해 다시 자신을 재구성해왔다. 미디어법과 경쟁법은 그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억누르기보다, 인간이 기술과 함께 진보할 수 있는 균형점을 설계하는 철학이 지금의 시대적 사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