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인생,
인생은 타이밍

세상의 기쁨과 슬픔이 한 몸에 있었다.

by Inna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지날 때쯤 둘째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은 임신이 쉽지 않았기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두 아이의 터울 차이가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연임신이 어려운 난임부부였다.

첫째 아이도 시험관으로 임신하여 낳았기에 둘째도 시험관 준비를 시작했다.


한번 겪었던 시험관 과정이었지만 둘째 시험관 과정은 더 힘들었다.

배아 이식 후 복수가 차서 여러 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이온음료를 끼고 살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한 번에 착상에 성공하여 둘째 아이 임신에 성공했고

피검사 수치를 통해 임신 확인을 확정받았다.


누구보다 행복한 나였고 날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1주일이었다.


1주일 후, 첫째 아이의 병명이 확인되었고

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되었다.


아이의 항암 치료를 위해 임신한 상태로 병원을 다녔고

입원 생활을 했다.

배가 나온 상태에선 주위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세상의 기쁨과 슬픔이 한 몸에 있었다.


첫째 아이의 고된 병원 생활로

둘째의 임신기간은 없는 듯 지나갔다.

잘 먹지도 못하는 첫째 아이를 보면서

이것저것 챙겨 먹는 것도 못할 짓이고

면역문제로 생과일을 집에서 먹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집에 일절 과일을 사지도 않았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현재는 없어졌지만

서울성모병원 지하에 김밥과 컵과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 컵 안에 들어있는 수박이 너무 먹고 싶었다.

먹을까 말까 그 앞에서 수없이 왔다 갔다 고민하다 사 먹었다.


둘째 아이가 먹고 싶은 거야 하면서

울면서 수박 조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게 임신기간 중 먹었던 몇 번 안 되는 과일인듯하다.


둘째 임신기간이 첫째의 제일 힘든 항암 기간이어서

뱃속 아이의 태명조차 지어주질 못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둘째 아이가 자기 태명은 뭐였는지 물어보면 그때마다 매번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그때 태명이라도 지어줄걸.. 하지만, 그때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미안하다. 둘째야

네가 그때 엄마한테 와주지 않았다면 엄마는 너를 만날 생각을 못했을 거야

그때 와줘서 너무 고마워 사랑한다.


백혈병은 발병 원인을 모르기에 첫째가 아픈 상황에서

둘째를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나도 아이가 항암치료를 하는 3년간 둘째 임신을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때 둘째가 생기지 않았다면

영원히 둘째를 생각 안 했을 거 같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그리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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