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기복이 May 23. 2022

무작정 퇴사 후 깨달은 것

월급이라는 무기는 생각보다 강하다


퇴사를 한다고 자유로울까요?



나는 무작정 퇴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다니던 회사의 상사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직원들에게는 높은 기준치를 요구했고 일하고 있으면 때때로 옆에서 감시했다. 아랫사람들은 맨날 불려 가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내리 갈굼으로 이어졌다. 출근하면 모두가 가장 먼저 살피는 게 '상사의 기분'이 되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나는 계속 퇴사를 갈등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옆에서 상사가 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고 계획이었는지 충동이었는지 그날 퇴근 후 바로 달려가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더 신기한 건 그 상사도 바로 "YES"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퇴사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아니라 돈이 필요하다

시간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더 조급했다. 좀 더 이른 나이에 무언가를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퇴사할 때만 해도 나는 제2의 인생에 부풀어 있었다. 퇴사 하고 여행 같은 것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인생 2막을 위해 돈을 아끼려는 목적이었다. 당장 다른 수익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내는 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했다. 마지막 월급을 받고 퇴직금이 들어왔다. 이 돈이면 내가 다른 일을 할 때까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직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있었다.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려고 학원까지 다녔다. 매달 학원비로만 50만 원이 나갔다. 매일 삼각김밥에 우유만 먹고 다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시간은 6개월이었다. 그 정도면 뭔가는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통장에 돈을 줄어갔다. 매일 1+1  삼각 김밥을 먹는 날도 질려갔고 너무 초라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통장이 텅장이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느냐. 아니면 이쯤에서 다시 곳간을 채우러 들어가느냐. 그리고 결국 나는 6개월 동안 이룬 것도 없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다시 회사로 들어갔다.


다시 들어간 곳은 전보다 안 좋은 곳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일을 해보겠다고 6개월 동안 사회가 원하는 것을 준비한 게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그 전 직장에서는 연차가 있었지만 이 직장에서는 지금 내가 신입이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신입 노릇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자존감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계속 예전 생각만 났다. '그냥 있었으면 지금쯤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분명 내 꿈을 위해 나온 거였는데 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불안하면 될 것도 안된다

퇴사 후 가장 우울했던 이유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처음에 품었던 희망도 잠시. 돈이 없는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퇴사 후 초기에는 카페에 나가 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카페에 가는 돈도 아까워졌다. 그렇다고 집에서 하루 종일 있자니 그것도 눈치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마트 푸트코트로 나갔다. 우유 하나와 김밥 하나를 사서 앉았다. 주변이 시끄럽고 다른 사람들이 밥 먹던 자리라 테이블도 더려웠지만 나한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힘들어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들을 찾아봤다. 퇴사에 관한 것만 골라 봤다. 그중 한 영상이 뼈를 때렸다. 법륜 스님이 항상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은 "웬만하면 퇴사하지 말고 일하면서 내 것을 찾아서 그게 잘 되면 그때 퇴사하세요" 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퇴사하고 불안하면 될 것 도 안돼요."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준비 없는 퇴사는 자유도 없다

월급은 마약이 맞았다. 자유를 위해 퇴사했지만 돈이 없는 자유는 없었다.  퇴사하면 짠~ 하고 뭔가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점점 불안에 잠식되어갔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내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간만 많으면 뭐든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돈에 쪼들리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퇴사했는데 점점 해야 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컴퓨터 학원이 눈에 들어오고 토익이 아른거리고 따야할 자격증들이 보였다. 퇴사하기 전에는 "퇴사하라" 는 말만 들리더니 이제는 퇴사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만 들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찾아라: 월급이라는 무기는 생각보다 강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퇴사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순전히 그것때문에 퇴사를 한다면 이제 나는 무조건 말릴거다. 나는 회사에서 일로 꽤 인정을 받았었다.그 당시 인정받던 그 기분에 우쭐해서 나가서도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고 나왔다. 그런데 퇴사 후 자존감만 곤두박질 쳤다. 일이 잘 안풀리다보니 희망도 안보이고 무기력해졌다. 다시 회사를 들어갔지만 나는 가장 신입이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내 위에 있었다. 나는 그들이 시키는 일만 하고 있었고 퇴사 후 떨어진 자존감이 회복은커녕 지하를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결심했다. 이제 다시는 직장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이루기 전까지는 퇴사를 하지 않고 버티기로. 그렇게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때보다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초라한 기분을 잊었는지 다시 울컥울컥 퇴사를 하고 싶어 진다. 그래도 꾸역꾸역 참고 있는 게 자꾸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어서 그렇다. 아마 나에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퇴사를 하고야 말았을 거다. 지금도 여전히 퇴사 후 프리랜서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또한 회사에 취직하는 것처럼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순간에 운이 터져서 짜잔~ 하고 되는 건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야 한다. 내가 회사를 나가서 또다시 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무작정 퇴사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직장 내 괴롭힘이나 나의 정신이 위협받는 일이 있다면 그때는 무조건 나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회사 체질이 아니라 나오고 싶은 거라면 준비된 다음에 나오는 게 좋다. 아니면 적어도 1년 이상은 먹고 살 수 있고 다음 플랜을 준비하는데 문제없도록 돈을 준비해놓고 나와야 한다.


여전히 버티며 자유의 날을 준비 중이다. 몸은 죽을 만큼 힘들지만 불안감은 적다. 나는 더 이상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때우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다. 마트 푸드코트가 아닌 카페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시간은 없다. 마치 인어공주처럼 시간을 주고 월급이라는 다른 무기를 얻었다. 퇴사를 하고 싶을 때는 그때의 힘든 기억을 돌려본다. 그럼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사라진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 오늘도 자유로운 내일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전 26화 3.6.9법칙 : 퇴사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