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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Aug 07. 2024

피서(避暑), 피서(避棲)

피서철이다. 이때만 되면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누구나 특별한 일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런 기억이다.     


6학년 때 국어시험 시간이었다. 아마 여름 방학을 앞둔 일 학기 기말시험이었을 게다. 대충 이런 문제가 나왔다. ‘여름날에 더위를 피해서 시원한 바다나 계곡으로 놀러 가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문제를 읽었으나 머릿속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알고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 ‘뭐였더라’가 아니었다. 그것을 일컫는 말 자체, 조금의 비슷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 ‘뭐지?’였다. 다른 문제를 후다닥 풀고 나서, 십여 분 이상 문제를 읽고 또 읽으며 머리를 싸매도 아무런 말의 파편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분단이 띄어진 옆자리에 있는 녀석을 슬쩍 보니 답을 쓴 듯했다. 답을 맞혀야 한다는 것보다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이 되어 끝내는 커닝할 맘이 일어났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그 친구에게 슬쩍 고개를 돌리며 시험지를 비스듬히 해서 그 문제를 가리켜 보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끝까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기는 가끔 내게서 커닝해 갔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나와는 성적을 다투던 사이여서 그랬을 것이다.     


결국 답을 쓰지 못한 채로 시험을 마치라는 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자마자 녀석에게 답을 물었다. 그 녀석은 뭐 그런 쉬운 것도 모르냐는 투로 ‘피서’라며 턱을 살짝 치켜들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피서가 뭐지? 알고 있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내 머리를 쥐어박겠지만, 정말로 난생처음 듣는 말이어서 뜨악하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단언컨대 교과서와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없는 말이었다. 나라 형편이 조금 피어 살만해지던 그즈음, 피서라는 말이 회자하기 시작했던 모양이었고 선생님께서는 대부분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로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피서'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도 우리 동네 친구 사이에서도 써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고 배운 적이 없었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한문을 배우기 전이니 그 말을 듣고도 얼른 해석도 되지 않았다.     


휴일이라는 개념도 없이 여기저기 일하러 나가는 동네 사람들이었다. 덥다고 쉬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어디로 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할 수도 없었던 형편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밥숟가락만 놓으면 코앞에 있는 강에 가서 시원한 물놀이를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가 있었는데 어디 멀리 갈 일이 뭐 있었겠는가. 여름 방학이면 얼굴과 온몸의 껍데기가 두어 번 벗겨져야 했고, 얼굴이 새까매지다 못해 강변의 까만 조약돌처럼 반들반들해지면 여름 방학도 끝나가는구나, 하며 아쉬움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피서라는 말은 아마도 근대에 들어와서야 만들어진 말인 듯하다. 조선 시대에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근다는 ‘탁족(濯足)’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60년대까지의 어려운 시절을 막 벗어나 먹고살 만해진 70년대부터 뜨거운 여름이면 시원한 곳에 놀러 가는 일에 국민이 드디어 눈을 돌린 것이다. 그 얼마 뒤부터는 ‘바캉스’라는 말이 도입(?)되어 여름이 되면 온 나라를 들끓게 했어도, 우리 동네는 그 열병 같은 피서나 바캉스 같은 말에 소가 닭쳐다 보듯 하던 딴 나라의 마을이었다.     


이제 그런 피서의 열병도 조금은 사그라진 듯하다. 자동차도 없이 커다란 꾸러미를 몇 개씩 들고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며 떠났던 8~90년대, 피서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청소년이 가출했다는 이야기도 있던 시절도 또 옛일이 되어 간다. 회사원의 상당수는 여름에는 차라리 시원한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하고 날씨 좋은 가을이나, 다가올 연휴에 맞추어 뒤이어 긴 휴가를 쓰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휴가로 사람이 듬성듬성한 사무실은 아무래도 좀 더 자유스럽고 느슨해지는 분위기이다. 더구나 보기 싫은 상사가 없는 사무실을 출근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휴가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리라. 그러니 출근하는 발걸음도 가볍고 상사와 휴가를 달리 씀으로 마주치지 않는 시간도 늘어지니 일거양득이라는 계산도 있을지 모르겠다.     


여름철이면 전쟁과 같던 피서 여행도 이제 자신의 기호에 맞게 조용히 쉬는 것으로 바뀌는 세상이다. 더위를 피해 피서를 가는 것보다, 혼잡한 피서를 피해서 피서를 가지 않는다.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가 피서의 번잡스러움을 피하여 조용히 집에서 ‘서식’하는 피서(避棲)의 모습이다. 하필 ‘棲’라는 글자에는 휴식하다는 뜻도 있다. 오늘 출근길, 아파트 주차장이 헐렁하지도 않았고 출근길도 매한가지 편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니 피서의 방법도 변하고 있긴 한가 보다. 피서의 풍습에도 세상은 돌도 돈다는 평범한 진리가 적용되고 있는 모양인가.     


올해도 避暑가 아닌 避棲를 즐기고 있다. 그래도 요즘 같은 피서철이면 6학년 시험 때 난생처음 듣고는 너무나 어리둥절했던 ‘피서’라는 말이 떠올라 피서의 뉴스에는 왠지 귀가 더 쫑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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