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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에게

by 동틀무렵

A형! 형은 아주 오래전에 태어났으니 형제 중에 제일 큰형이겠습니다. 형은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아요. 하도 자유로워 격식도 따로 없는 듯하고, 때로는 그것을 만든 재료가 이상해도 문제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봤어요. 형이 하는 일은 엄청 난해합니다. 그일은 원래 해석할 수 없는 심연을 갖고 있다니 그럴 테지만, 그럴수록 사람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또 술에 취해 만들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유명하신 분은 ‘요즘 것’들은 술을 먹지 않아서 좋은 물건을 못 만든다고 일갈했다고도 하지요. 그만큼 평범한 생각 너머의 다른 세상의 그 무엇으로 만드는 모양입니다. 나는 형이 만든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 못 할 때가 더 많지만, 늘 존경스럽고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B형! 또한 늘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그 밖에 동물 간의 뇌 의식에서 가장 다른 점이 허구를 만드는 능력이라고 합디다. 오직 사람만이 허구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도 하고 남을 속이기도 하는가 봐요. 형이 인간만이 가진 그 능력으로 수만 개의 말과 수천 가지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풀어놓고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거대한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B형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생각하고 부러워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형들에 비하면 좀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형님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같은 형제로 쳐주지 않고, ‘잡것’이라고 멸시도 했다지요. 지금의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정도지만 말입니다. 해본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은 핑계이고 타고난 자질의 부족이 더 큰 이유겠지만, 막상 해보니 이게 형들의 일 만큼은 아니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날마다 느낍니다. 우리 일도 아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 오히려 그게 더 어렵습니다. 이론도 여러 가지이고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 자주 나를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어떤 이는 일상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해서 깊은 사고의 달관으로 의미화하거나 형상화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분은 술지게미를 짜듯이 억지로 아름답게 하려고만 해서는 안 되고, 절실하고 진실하게 평범한 생활을 인간미 풍기게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주) 그러나 정작 그분의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워 또 나를 좌절케 했습니다. 난 도저히 그렇게 만들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자주 헷갈리고 고민이 많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에 대한 사색과 인생의 관조(이건 정말 어렵습니다)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재미와 아름답게 만들되 진솔하게 쓰면 된다는 것인데 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참 C형이 빠졌습니다. C형도 형제이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 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생략하겠습니다.


시(詩)형! 소설(小說)이 형! 희곡(戲曲)이 형!

나 막냇동생 수필(隨筆)이 입니다. 오랫동안 형들의 그늘에서 서자 취급을 받다가, 먼저 이 일을 시작한 분들이 각고로 힘써서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중에서도 ‘에세’와 ‘미셀라니’를 따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마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예술가 중에 문학은 예술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듯이 말입니다. 내 개인에 국한에 말씀드리자면 나는 거기에 끼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다른 많은 분은 다릅니다.


형들이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마누라는 힝! 하고 콧방귀를 뀌며 피식 웃습디다만,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늘 많은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글로 내뱉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라지요. 생각은 끓어오르는데, 단지 그것을 글로 옮길 때 사람마다 방식이 좀 다르고, 특색이 좀 다를 뿐입니다.


또 詩형처럼 술에 취하면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글도 어젯밤에 술을 잔뜩 먹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요상하게 한번 써보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글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형님들. 이런 몇 개의 공통점으로만 봐도 우린 형제입니다. 그러니 형님들도 우리가 하는 일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늘 형님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회사 시절에, 상사의 마음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직원에게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당당하게 당신 ‘쪼대로' 하소! 라고 말입니다. 이제 스스로 그 말을 지켜, 내 쪼대로 계속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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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평범한 생활이란 곧 위대한 생활이다. 치졸한 글이 가끔 인간미를 지니고 있거니와, 인간미를 풍기는 글이란 또한 위대한 글이다. 서가書家들이 완당阮堂의 글씨 중에서도 예서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 고졸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저속한 인품의 바닥이 보이는 문필의 가식, 우러날 것 없는 재강滓糠을 쥐어 짜낸 미문美文의 교태, 옹졸한 분만憤懣, 같잖은 점잔, 하찮은 지식, 천박한 감상感想, 엉뚱한 기상奇想,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며, 우리의 붓을 얼마나 누추하게 하는가. ‘절실’이란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정열의 부르짖음도 아니요, 비통의 하소연도 아니요, 정精을 모아 기奇를 다툼도 아니다. 요要에 따라 재才를 자랑함도 아니다. 인생이 걸어온 자취 그것이 수필이다. 고갯길을 걸어오던 나그네, 가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정수情愁에 잠겨도 본다. 무심히 발 앞에 흩어진 인생의 낙수落穗를 집어 들고 방향을 맡아도 본다. (윤오영 / 엽차와 인생과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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