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여러 가지 유추

by 동틀무렵

이장에서는 그 외 몇 가지 단어에 대해서, 그 어원을 통해 두 언어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가. 전자공학을 전공한 필자는 고교시절 이과였다. 따라서 국어는 깊이 있게 배우지 않아 많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때 배운 우리말 古語 중에서도 지금도 생각나는 단어가 몇 개 있다. 온(백), 즈믄(천)과 괴다(사랑하다) 같은 말이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우리말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사랑은 ‘こい(코이)’이고 연인은 ‘こいびと(코이비또)‘이다. 사랑의 우리 고어 ‘괴다’가 일본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 여담으로 요즘 우리가 우리말의 스펙트럼을 자꾸 좁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박완서 님은 소설에는 순우리말을 집요하게 사용하는데, 거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낯선 말이 많다. 한 장을 읽으려면 사전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다.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많지만, 작금의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빨리’라는 말을 하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서두르자’라는 말도 사용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백 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간단한 의사소통에만 쓰이는 짧고 임펙트가 강한 형용사, 부사 몇 개와 한자어만 우리말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매우, 몹시, 아주, 썩, 퍽, 무척, 등의 정도를 표현하는 다양한 부사어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俗語인 ‘x나’라는 말 하나만이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매우, 몹시 등의 단어들은 ‘온, 즈믄, 괴다’처럼 古語로 취급받겠지. 그러나 언어는 大衆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니 어찌할 것인가.


나. 발(足)과 발(簾)

빗발치다’에서 빗발의 일본어는 ‘あめあし(아매<雨,비>, 아시<足,발>)’라고 하며, 이는 ‘비의 발‘로서 글자 그대로 ‘빗발’이 된다. 발은 우리말이다. 그러나 우리말 빗발은 ‘비’와 속격 조사가 결합한 ‘빗’과 가늘고 긴 물체의 뜻인 ‘발’이 결합한 것이다. 즉, 足을 뜻하는 발이 아니고, 늘어뜨린 장막을 뜻하는 발이다. 그런데 일본어도 의미는 다르지만 ‘발’에 해당하는 ‘あし(아시, 발)’로써 빗발을 표현한다. 이처럼 의미는 다르지만, 똑같이 발을 뜻하는 말이 ‘빗발’에서 같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혹시 원래 우리말이었을 때는 ‘발(늘어뜨린 장막의)’이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발(足)’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あし’로 변한 것이 아닐까.


다. 무좀, 물벌레

우리말 무좀은 '물(무) 벌레(좀)'의 의미이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도 무좀은 ‘みずむし[미즈(물), 무시(벌레)]’로 글자 그대로 물벌레이다. 이렇게 단어의 생성 과정이 같은 것도 고대에서는 같은 언어이었음이 더 분명한 증거가 된다.


라. 동사나 형용사에 붙어서 뜻을 표현하는 같은 단어

먼저 ‘맞’과 ‘まっ(맏)’의 관계다. ‘맞다’의 '맞'은 정말, 진짜의 의미이다. 일본어에서 ‘まっ(맞)’도 '정말, 진짜, 아주’의 의미이다. 일본어에서도 ‘まっ’은 명사·형용사·형용 동사 등에 붙어서 강조나 진짜임을 뜻하는 데 사용한다. 예를 ‘まっくら(아주 캄캄함), まっしろ(새하얌), まっか(새빨감)’, 등으로 진짜 또는 강조의 의미임이다. 우리말의 '맞'이 그 어원으로 생각된다. 그 외에도 ‘한밤-まよ(마요), 맞아-まったく(맞타쿠), 새하얗다-まっしろい(맞시로이), 한여름-まなつ(마나츠)’ 등으로 모두가 진짜, 정말이라는 말뜻을 강조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앞장에서 언급한 ‘마구’와 ‘まくる(마쿠루)도 이런 예이다. 다만 우리말 ‘마구’는 부사이지만, 일본어 ‘まくる(마쿠루)’는 동사 뒤에 연용형으로 붙어 ‘마구 ~하다’의 뜻으로 의미를 강조한다. ‘ふきまくる(마구 세차게 불어 대다, 휘몰아치다), いいまくる(혼자만 마구 떠벌려대다; 기세 좋게 떠들다)’와 같이 사용된다. ふぶきがふきまくる(후부키가후키마쿠루)’는 눈보라가 마구 몰아친다는 뜻이다. 연이라기에는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마. 고드름과 드리우다

고드름’은 ‘얼음이 드리워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일본어는 ‘つらら(츠라라)’인데, ‘つる(츠루)’는 ‘드리우다’의 뜻이며 우리말과 유사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드름은 ‘고’를 ‘드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고’에는 얼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야 하는데, 일본어에서 얼음은 ‘こおり(코오리)’이다. 앞 음절이 일치한다. 우리말에는 ‘고’ 얼음과 연관된 단어는, 손발이 시리고 얼 때 사용하는 ‘곱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유추해보면, 우리말에도 고어에는 ‘고’라는 단어가 ‘얼음, 얼다’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되며 고드름에서의 ‘고’와 ‘こおり(코오리,얼음)는 같은 뿌리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비슷한 예로 ‘두레박’은 ‘つるべ(츠루베)’다. 두레박은 우물에 박을 드리워서 물을 떠낼 때 사용한다. 이는 ‘두레’와 ’つる(츠루)’는 ‘무엇을 늘어뜨려 드리우다’의 뜻일 것으로 생각된다.


바. 덮다, 덮밥과 どん(돈)

일본 음식에서 가장 흔한 것이 덮밥이다. 밥 위에 반찬이 될 만한 것을 덮어서 내는 음식의 총칭이며 ‘どん(돈)’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덮다’가 변한 말은 아닐까. ‘どん(돈)’은 덮→돞→돈(どん)'의 변화를 거친, ‘덮다’의 ‘덮’이 원래의 말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사. あてじ(取音字, 借字)때문에

일본어에서는 あてじ라는 용법이 있다. 한자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음(音)이나 훈(訓)을 빌려서 한자를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일부 단어에서는 그 붙인 한자가 단어의 원래 뜻과 절묘하게 맞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때로는 단어의 어원을 찾는데 헷갈리게 한다. 인해 처음에는 일본 고유의 단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면 한자는 소리에 맞게 빌린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는 일본인들의 造語 능력에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양복을 뜻하는 ‘せびろ(세비로)’인데 한자어는 ‘背広(배광)’이다. 나는 처음 이 단어를 접하고 일본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두 가지 說이 있는데, ‘civil clothes’가 어원이라는 설과 런던의 고급 양복점 거리인 ‘savile row(새빌 로우)’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아마 후자가 맞는 것 같은데 절묘하게 맞는 あてじ로 생각된다. あてじ로 붙인 背広 뜻대로 해석하면 ‘등이 넓다’는 의미로 양복의 모양새와 일치 한다. 양복은 어깨에 봉(보충재)이 들어 있어 등이 넓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우리 말 ‘마누라’에 해당하는 ‘にょうぼう(뇨보)’는 한자어로 ‘女房(여자 쪽)’인데, 부부간의 호칭 ‘여보’는 원래 같은 어원이었고, 일본어에서는 ‘にょうぼう’를 의미에 맞는 한자어에 골라서 女房이라고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 눈사태가 왜 나다레(なだれ)일까

눈사태의 일본어는 ‘나다레(なだれ[雪崩·傾れ])’이다. 한자어는 눈 설(雪), 무너질 붕(崩)이니 의미가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雪(설)의 훈독은 ‘ゆき(유끼)’이며, 음독은 ‘せつ(세츠)’이니, ‘나다레((なだれ)’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또 崩(붕)은 훈독이 ‘くずす,くずれる(쿠즈쓰, 쿠즈레루)’이고, 음독은 ‘ほう(호우)’이니 이 또한 전혀 맞지 않는다. 만약 한자어의 의미대로라면 눈사태는 ‘ゆきくずす(유끼쿠즈쓰)’나, ‘せつほう(세츠호우)’가 되어야 할 텐데 이런 단어는 없다. 왜 눈사태를 일본인들은 ‘나다레(なだれ)’라고 할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를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눈사태는 ‘눈이 달려 내려오는 것’이다. 즉, ‘눈+달리다’가 ‘눈→누→나, 달리다→다레’ 의 변천으로 눈사태가 ‘나다레’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아니어도 단어를 외우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가)


자. 한국어가 일본어에 그대로 녹아있어도, 한국인도 일본인도 그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는다.

7장 명사 편에서 東(동녘 동)을 ‘아즈마(あずま)’라고 읽는 것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다. 최근 일본의 유명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를 읽었다. 이야기도 기발하고 무서운 결말을 예상했으나, 감동적인 반전의 결말이 작가의 역량을 말해준다. 그러나 나는 그 소설에서 ‘히다타카야마’라는 지명에서 번쩍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히다’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한자로는 飛騨高山라고 쓰고 있는데 飛騨는 히다라는 글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飛騨은 飛(날비), 騨(연전총<말의 일종>탄)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일본 기후현에 있는 도시로 눈이 쌓인 큰 산들이 보였다. 일본 최고의 산악지대로 일본의 알프스라고도 불린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히다’는 바로 우리말 ‘흰, 희다’가 아닐까. 희고 높은 산, 즉 ‘히다(흰)+타카(높은)+야마(산)’이 아닐까. 이처럼, 우리말이 일본어에 그대로 녹아 정작 일본인들은 그 의미를 모르면서 일본어화 되어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있다. 필자가 ‘히다(ひだ)’에서 ‘흰, 희다’를 유추했는데 나처럼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특히 일본의 지명에서 우리말이 어원이라는 것을 주장한 내용이 있었는데, 아래와 같다. 책을 구해 읽으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그 책*은 완전히 절판되어 중고조차 구할 수는 없었다. 다만 먼저 읽은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책을 내용은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미사사(みささ)온천:물솟아온천 .히다(ひだ)산맥:흰땅산맥

.히타치(ひたち)시:해돋이시 .아비꼬(あびこ)시:내손자시

.시미즈(しみず)시:샘물시 .가카라섬:가거라섬

.쓰시마(つしま):두섬 .히카리(ひかり)시:빛깔시


처음 이글을 시작할 때 재미로 읽어달라는 설레발을 쳤지만, 사실 정리하다 보니 더 깊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더 커져만 간다. 단순히 재미나 호기심을 넘어 우리말과 일본어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의 희미한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늘 애매한 두 나라의 관계를 재정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또 하나의 한국/ 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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