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의미 인식의 동일성

by 동틀무렵

이제까지 단어와 품사 위주로 우리말과 일본어의 유사성을 기술하였다. 이 장에서는 언어 의미의 인식이 같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두 언어의 필수 동사 중 상당수가, 그 단어의 본디 뜻뿐만 아니라 보조동사로도 활용하는데, 용례가 똑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림을 보다’와 ‘먹어 보다’에서 ‘보다’는 글자는 같아도 의미는 완전 다르다. 즉, 여기에서의 ‘보다’는 ①눈으로 보는 것 ②어떤 행위의 보조동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보다’에 해당하는 ‘みる-미루’도 그 쓰임새가 한국어와 완전히 똑같다. 이렇게 한국어와 일본어는 하나의 단어로 본디의 행위(주로 물리적)를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단어에 붙여 시도, 진행, 상태 등을 표현할 때 보조동사로 사용한다. ‘보다(みる), 있다(いる), 두다(おく)’ 등의 단어가 이런 종류다.


또 모든 언어는 하나의 단어로 여러 의미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두 언어는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나타낼 때 그 의미가 똑같다는 것이 특이하다. 예를 들면 ‘소리를 듣다’와 ‘약이 잘 듣는다’에서의 ‘듣다’는 글자만 같을 뿐,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일본어의 ‘きく(키쿠)’도 그렇게 사용된다. 이 용법이야말로 두 언어가 고대에는 같은 언어였다는 것을 강하게 증명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이런 단어에는 ‘듣다(きく), 멀다('とおい), 걸다/걸리다(かける), 올리다(あげる)’ 등이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가. 우리말 ‘보다’라는 동사는 눈으로 사물을 보다, 라는 뜻과 무엇을 시도 또는 행동하다는 뜻(예:해보다, 먹어보다)일 때 보조동사로 쓰이는데, 일본어의 ‘보다’에 해당되는 ‘みる-미루’도 두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영어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은 ‘See’이고 시도나 행동하는 것은 ‘Try’를 사용하며 ‘See’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말과 일본어는 같은 하나의 단어를 용법이 같은 두 가지로 활용한다.

예) 텔레비젼을 보다 - テレビをみる(케레비오미루) ←눈으로 보는 행위

취직을 해보기로 했다 - 就職をしてみることにした(쇼소쿠오시테미루코또니시타) ←행위의 보조동사

그림을 그려보기로 하다 - 絵を描いてみることにする(에오가이테미루코토니스루) ←행위의 보조동사


※ 가장 기본 동사의 하나인 '보다'와 ‘みる(미루)’는 말의 뿌리가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상도에서는 ‘보다/보인다’를 ‘비다/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어에는 ‘-びる(비루)’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명사를 받아서 ‘~인 것처럼 보이다, ~티가 난다’라는 뜻으로, 한국어 '보다(비다)'와 비슷하다. 예로 ‘おとなびる(오토나비루)'는 어른처럼 '보인다(티가 난다)’라는 뜻이다. 이를 볼 때 ‘보다-비다-미루(みる)’의 변화를 거친 같은 뿌리 단어로 생각할 수 있다.


. ‘있다-いる(이루)’도 보다와 같은 문법으로 사용한다. 물체가 존재하는 뜻과, 보조동사로 사용하여 동작 결과의 현존(現存)이나 계속과 진행을 나타낸다.

예) 강아지가 있다 - いぬがいる(이누가이루) ←현존 상태

창문이 열려있다 - まどがあいている(마도가아이테이루) ←동작의 결과

책을 읽고 있다 -ほんをよんでいる(홍오욘데이루) ←동작의 연속


다.두다’는 물리적으로 어디에 놓인 상태를 의미와 어떠한 행위를 미리 해 놓는 상태에서도 사용된다. 희한하게도 일본어에서도 물건을 두는 상태와 어떤 행위의 보조동사로서 ‘おく(오쿠, 두다)’를 사용한다. 이런 용례는 다른 언어 간에는 거의 나타날 수 없는 문법이다. 같은 祖語에서 두 언어가 갈라졌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예로 생각된다.

예) 물건을 두다 - しなものをおく(시나모노오오쿠) ←물리적인 상태

일을 안 하고 그냥 두다 - しごとをやらずにおく(시고토오야라즈니오쿠) ←행위의 상태

숙제를 해 두다 - しゅくだいをしておく(슈쿠다이오시테오쿠)←행위의 상태


라.듣다’도 마찬가지이다. 귀로 소리를 듣는 신체 반응의 행위뿐 아니라 장비나 기구가 어떤 요청에 작동 또는 반응할 때도 듣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자 표기는 다르나 발음은 같다. 이렇게 소리가 들리는 것과 기계 등이 잘 동작하는 것과 같이 전혀 다른 의미가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말뜻의 인식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국어에서는 소리를 듣는 것도 듣다이며 약이 잘 듣는다처럼, 효과가 있는 경우에도 듣다를 사용하는데, 일본어도 똑같다. 聞く(듣다), 利く(잘 움직이다), 効く(듣다; 효과가 있다)등인데, 우리말 ‘듣다’에 대응하여 사용하는 단어는 한자어는 달라도 모두 ‘きく(키쿠)’이다.

예) 소리를 듣다 - こえさをきく(코에오키쿠) ←귀로 듣는 것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 - ブレーキがき(利)かない (브레키가키카나이) ←기계가 작동, 반응

약이 잘 듣는다 - くすりがよくきく(구스리가요코키쿠) ←효과가 있음


마.멀다’도 물리적 거리가 멀다는 뜻과 귀가 들리지 않는 경우, 소리가 멀어졌다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일본어의 'とおい[遠い]'도 ‘거리가 멀다’라고 할 때와 및 '귀가 멀다'라고 할 때에도 사용한다.

예) 거리가 멀다 - 距離がとおい(쿄리가토오이) ←물리적 거리

귀가 멀다(어둡다) - みみがとおい(미미가토오이) ←청력이 약함


바.걸다/걸리다’는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 물건을 어디에 거치하는 경우, 전화할 때와 그리고 병에 걸릴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일본어에서는 ‘かける/かかる(카케루/카케루)'가 똑같이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걸다/걸리다’와 ‘かける/かかる(카케루/카케루)’는 발음도 비슷하다. 고대에는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예) 시간이 걸리다 - 時間がかかる(지칸가카카루) ←시간 소요

옷을 옷걸이에 걸다 - 着物をハンガーにかける(키모노오항가니카케루)← 물건을 거는 행위

전화를 걸다 - 電話をかける(뎅와오카케루)←전화를 연결하는 행위

감기에 걸리다 - かぜにかける(카제니카케루)←병에 걸리는 경우


재미있는 것은 ‘걸친다’는 뜻인 ‘かける[掛ける]’도 두 언어가 같은 용례를 사용하고 있다. 보통 무엇을 걸친다는 것은 물건을 대상으로 하지만, 사람이 의자 같은 것에 편하게 걸터앉는 모습을 표현할 때 한국어에서도 의자에 ‘걸터앉는다’고 하듯, 일본어에서도 의자에 푹 앉을 때 ‘かける(걸치다)’를 사용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두 나라의 민족이 같은 언어 인식이 같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 의자에 걸터앉으세요. - 椅子にかけてください(이쓰니카케테쿠다사이)


사. 우리말 ‘올리다’라는 뜻은 위로 무엇을 옮기거나 윗사람에게 드리는 것, 결혼식을 올리다, 와 같이 어떤 행사를 거행할 때도 사용하는 말이다. 일본어에서도 ‘あげる-아게루’라는 단어가 그 역할을 똑같이 한다. ‘あげる[上げる]’는 물건을 올리거나 결재나 말씀을 올리는 경우, 그리고 음식물을 토하는 경우 등, 여하튼 위로 무엇을 올린다는 뜻을 표현할 때와 행사의 거행을 의미할 때도 ‘あげる[挙げる]’를 사용한다. 우리말의 용례와 똑같다. 단지, 한자를 달리 써서 구분할 뿐이다. 이것은 고유의 일본어에 그 의미에 맞는 한자를 찾아 붙인 것이며, 이것으로 인해 다른 말은 아니다.

예) 책을 위로 올리다- 本を上にあげる(홍오우에니아게루) ←물리적 행위

축하 말씀 올립니다 -おいわいをもうしあげます(오이와이오모시아게마쓰) ←말씀을 드리는 행위

뱃멀미로 올리다(토하다) - 船によってあげる(후네니욧테아게루) ←움식물을 게워내는 행위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教会で結婚ん式をあげた(쿄카이데겟콘시키오아게타) ←행사의 거행


※ ‘あげる-아게루’는 이미 말했듯, ‘들다, 위로 올리다’의 뜻이다. 그런데 비가 그치는 것, 날씨가 갬을 뜻하는 일본어가 ‘あめあがり(아매아가리)’다. 비를 들었으니 비가 그치고 날씨가 갠다고 해서 그렇게 사용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가 이 단어에서 위의 예와 마찬가지로 두 나라의 언어에서 의미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생각되어 무릎을 쳤다. 우리말에서도 비나 눈이 그치고 날씨가 갤 때면, ‘비가 든다, 날씨가 들겠네’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올리다’와 ‘あげる-아게루’가 지금은 발음이 전혀 다른 단어이나 같은 의미로 활용하는 것, 또 초성이 같은 것을 보아 고대에는 같은 단어였을 것이다.


아. 귀/귀퉁이

’는 일본어로 ‘みみ[耳]’다. 두 언어가 일치하거니 비슷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말 귀는 신체를 뜻할 뿐 아니라, 어떤 사물의 귀퉁이나 모서리를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불의 모서리 부분을 ‘이불귀’라 하고, 바둑판의 네 개의 모서리도 바둑판의 귀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어 ‘みみ[耳]’에도 신체의 ‘’ 뿐만 아니라 ‘모퉁이, 끝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예로 ‘おりもののみみ(오리모노노미미)’는 ‘직물의 귀퉁이’의 의미다.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지 않은가. 하나의 낱말로 두 나라의 사용처가 같다는 것은, 시간에 따라 언어는 분화되고 변했지만, 분명 같은 말과 같은 용례로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어떤가. 우리말과 일본어에서 같은 단어를 같은 인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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