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
지금 두 언어는 완전 별개의 말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들린다.
이제까지 두 언어를 비교하고 비슷한 것을 모아 한 뿌리였음을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의 두 언어는 완전 별개로 진화하여 왔다. 그 이유의 하나는 두 언어가 사용하는 자모 숫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극우주의 일본인들은 주장한다. 일본어는 하늘이 내린 지구상의 유일한 언어로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언어라고 주장한다. 일본어에 대한 근거 없는 자부심이며 어이없는 주장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50여 개의 문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며 그 우수성을 말한다. 그러나 일본 문자는 50여 개의 문자를 나열하여 단어를 이루는 식으로, 소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수두룩하게 많다. 그러다 보니 같은 발음의 한 단어가 뜻은 여러 개인 경우와, 소리와 글자가 일치하지 않는 단어도 많다. 예를 들면 ‘으’를 표기하는 글자가 없으니 ‘으’를 ‘오’ 발음의 문자로 표기된다. 카드를 ‘カード(카도)’로 적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처음 일본어를 공부할 때 용산역 전자상가 앞을 지나다가 카타카나로 쓰인 간판이 있어 읽긴 했는데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간판에는 ‘와루도(ワールド)’라고 적혀 있어 외국어라고 생각은 되었지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월드(World)’를 ‘와루도(ワールド)’ 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어는 자모가 풍부하지 않아 특히 외국어 표기가 어렵다. 일부 사람은 이것 때문에 일본인들은 영어 발음에 취약하다고도 한다. 한편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글자 수는 무려 12,768개다. 따라서 세상의 온갖 소리, 모습을 제 각각 문자로 쓸 수 있다.
여담 : 이렇게 자국어에 자부심이 강한 일본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빌려 자국어로 사용하는 단어는 매우 많다. 우리말은 특별한 기술용어나, 새로운 문물 등에만 영어를 받아들여 외래어로 사용하나, 일본어에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보통 말에도 영어에서 따온 말이 매우 많다. 영어를 섞어 사용하기 좋아하는 일부 우리나라 識者들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상용화하여 사용하는 정식 일본 단어이다. 예를 들면 ‘잘생기다’는 ‘한사므다(ハンサムだ)’인데, 영어 ‘Handsom’에서 가져온 말이다. 우스개로 일본어로의 ‘미남’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거의 사용치 않고 영어에서 빌린 ‘한사므(ハンサ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본 남성은 미남이 드물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편의점보다는 ‘컨비니(コンビニ)’가 완전 상용화되어 사용된다. ‘Convenience Store’에서 따온 말이다. 백화점은 ‘ひゃっかてん(百貨店)’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거의 쓰지 않고 ‘Department’에서 따온 ‘데파토(デパート)’를 사용한다. 이렇게 사용하게 된 것은, 2차대전 패망 후 미군정지배를 받으면서 미국을 동경해서 그렇다는 일부의 의견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외국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민족성이 근대화 때에 선진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지금의 강국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언어가 비슷하면 사람의 인식과 의식도 그에 따라 간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자주 들었던 말 중에 ‘다리 떨면 복 날아간다’라는 말이 있었다. 다리를 달달 떨면 으레 어른들은 그 행동을 제지하곤 했다. 우리 민족의 손복(損福)설화이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의식이 비슷한 모양이다. 일본어의 ‘びんぼうゆすり(貧乏揺すり, 빈보유쓰리)’가 그와 같은 뜻의 말이다. びんぼう(貧乏)는 가난한 사람, ゆすり(揺すり)는 흔들다는 뜻이다. 즉, 다리를 떨면 가난하다는 의미로 우리 와 생각이 같다. 이를 보아도 같은 언어는 같은 의식을 동반한다.
이렇게 사고에 있어서 비슷한 면도 많지만, 다른 면도 있다. 우리는 ‘왔다 갔다’로 쓰는데, 일본은 ‘갔다 왔다(行ったり来たり,이타리키타리)’로 쓰고 있다. 우리는 오는 행위가 있어야 가는 행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가는 행위가 먼저 있은 다음에 오는 행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같은 논제이다. (참고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왔다리갔다리’는 우리말과 일본어(たり,타리)가 복합된 일본어의 흔적이다) 먼저와 나중을 뜻하는 선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선후(先後)’라고 하지만, 일본인은 先後보다는 거의 '후선(後先. あとさき)’을 사용하는 것 같다.
지금도 두 언어는 계속 교류하고 있다.
이제까지 지금의 일본어의 상당수는 우리말이 건너간 말이며 그 흔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명사에서 이런 말이 많고, 고대 우리말이 일본에 건너가 그대로 일본어가 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얼마 전TV에서 진품명품이라는 방송을 시청하는데, 오래되어 보이는 고가구 한 점이 출품되었다. 작지만 단아한 모양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름은 '개개수리장'이라고 했다. 이 가구는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개개수리장이라는 이름도 ‘かけすずり(가케스즈리,掛硯欌)’에서 나온 명칭이라고 했다. 여기에서도 말의 이주와 변화를 알 수 있다. 개개수리와 카게수리는 발음이 비슷하지만 처음 이 단어들을 대하면 전혀 다른 말로 느낄 것이다. 이 말도 긴 시간이 지나면 그 원래 말은 잊힐 것이고, 아마 개개수리장을 원래의 순우리말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처럼 이 단어는 문화의 이동과 영향에 따라 언어도 이주하여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그렇게 된 말도 여럿 있다. 알다시피 냄비는 ‘なべ(나베)’가 어원이다. 마찬가지로 가마니나 오자미 같은 단어도 일본어가 우리말이 된 경우다. 가마니는 일본어 ‘가마쓰(かます[叺])‘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변한 말다. 오자미는 운동회할 때 팥이나 콩을 넣은 조그만 헝겊주머니를 장대에 매단 바구니에 던져 깨뜨리는 놀이에 사용하는 도구다. 이 말도 원래는 일본어 ‘오쟈미’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온 외래어로 취급되었으나, 1999년에 표준어로 정해졌다고 한다.
※ 오자미라는 단어는 ‘박동규’ 서울대교수가 지은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에서는 쓰지 말아야 할 일본어 잔재 단어 목록에 올라있었다. 갸우뚱해서 국립국어원에 질의해보니, 1999년에 우리말 표준어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책은 1998년에 출간되었다. 우리말 단어나 문법을 공부할 때는 가능한 최근에 간행된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 박동규교수는 박목월시인의 아들이다.
이처럼, 언어는 연원을 떠나, 대중이 많이 쓰면 그 자체가 언어가 되어버린다. 짜장면이 2011년에 표준어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문법도 마찬가지다. 문법 법칙에 벗어난 많은 예외도 대중이 많이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준어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를 만드는 것은 국가가 아니고 그 말의 쓰는 집단이 만들고 표준어가 된다.
이렇게 두 언어의 교류과장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다. 어떤 경우에는 포탈의 오픈 사전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금(굼,검)프’라는 단어를 오픈사전에서는 부산 등 경남지방에서 사용하는 삽이나 숟가락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것으로 생각된다. 네덜란드어 ‘Schop(스콥, 삽)’이 일본으로 건너와 ‘スコップ(스코푸)’가 되었고, 지금 일부 지방에서 숟가락을 ‘수금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즉, 수금프는 Tobacco→タバコ(타바코)→담배와 같이 외국어가 일본어를 거쳐 우리말(?)이 된 경우이다. 그 외에도 일본어였지만 이제는 그 어원 자체도 모호해져서 우리말의 속어로 생각되어 사용되는 일본어도 있다. 남을 속일 때 ‘뒷다마친다’ 같은 말인데 뒤통수를 쳤다는 의미처럼 생각되어 우리말 속어로 생각하겠지만, ‘뒷’과 ‘だます(다마쓰, 속이다)’를 합성하여, 뒤에서 속인다는 의미로 만들었거나, ‘あたま(아타마, 머리)’를 ’앞타마‘로 생각하고 뒤통수니까 ’뒷타마‘라는 말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문화와 인적 교류가 있으면 언어는 반드시 전파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지금 일본 젊은이들은 우리말 비속어인 ‘졸라’나, ‘대박’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かんじ(칸지, 느낌)’에서 따온 ‘간지난다’든가, TV 예능 방송에서 유행처럼 사용하는 ‘超OO’이나 ‘일(1)도 재미없다’라는 말의 ‘超’나 ‘일’도 일본에서 사용하는 유행어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언어의 전파와 상호영향은 지금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글에서 다룬 유사성도 그런 과정을 거친 결과였을 것이다. 물론 한국어와 일본어에서의 관계는 상호영향보다는 우리말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