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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Jan 09. 2023

성장기(成長期) - 그 시절의 겨울이야기

학교 다녀오면, 가방을 방으로 휙 던지고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깡조밥 한 덩이와 김장 무 한 조각이지만, 꿀맛 같은 간식이다. 허기를 달래고는 누구도 기다린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김없이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골목으로 달려갔다. 팔을 휘휘 돌리며. 아이들이 많지 않을 때는 구슬을 다섯 개의 구멍에 차례로 넣는 놀이나, ‘비석 치기’를 하다가, 한 놈 두 놈 모이고 골목 안이 왁자지껄해지면, ‘다시겟또*’나 ‘사이방**’이나 이런 놀이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이런 놀이로 동네 골목에 아이들이 쏘다니기 시작하면, 골목 안에는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고 생생한 공기가 꽉 차는 것 같았다. ‘땅따먹기’나 여자아이들이 하는 ‘사방치기’도 더러 했었다. ‘비석 치기’나, ‘사방치기’를 하기 위해서는 단단하고 납작한 돌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여름날 강가에서 놀면서 그런 돌이 보이면 집에 가져와 꼭 보물처럼 숨겨 놓고 겨울을 기다렸다.

     

햇볕이 제법 따사하고 바람이 적당한 날들은 철길을 넘고 강둑을 넘어 강으로 가곤 했다. 주머니에는 어느 집 부엌에서 가져온 ‘돈표 성냥’이 한 녀석의 주머니에서 불룩했다. 강으로 가는 길, 쓰레기 더미에서 담배꽁초도 몇 개 줍는 것도 늘 같은 행동이었다. 강변 모래밭에 둘러앉아, 삭정이를 한 아름씩 모아서 모닥불을 피우고, 꽁초를 돌아가며 빨아 보면 하늘이 핑 돌고 메마르고 가파른 기침이 터져 나오지만, 서로가 재미있다고 깔깔댔다. 이마저도 심심해지면 드디어, 불 장난할 시간이다.

     

바람을 등지고, 불쏘시개를 마른풀에 던지면 후후 불 것도 없이 먹물이 스며들 듯, 금방 들판에 한 줄 먹물이 스며든다. 소리도 없이. 얼마쯤 타들어 가던 들불의 불길이 거세지면 와락 겁들이 나서, ‘기차표’ 검정 고무신 발들을 비볐다. 발아래에서는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초겨울이 들면, 어른들이 겨울 갈무리하듯이 아이들은 썰매를 미리 준비하기 시작했다. 구석구석을 뒤져서 나무토막과 판자와 철사를 찾아내어, 적당한 길이로 각목을 잘라서 앞부분은 얼음에 잘 미끄러지도록 비스듬하게 잘라 썰매 발을 만들고, 알맞게 자른 철사를 불에 달구어 뻰찌로 잡고는 발 앞으로 쑤셔 넣었다. 하얀 연기가 한 줌 피어오르며 철사가 썰매 발에 깊이 박히고, 다시 뒤쪽으로 돌려 못으로 단단히 고정하였다. 썰매 발 두 개 위에 판자를 몇 장 알맞게 잘라 올리고, 못 질을 하면 그럴싸한 썰매가 완성되었다. 좀 잘 사는 집 아이는 철공소에 가서, 오십 원을 주고 스케이트 날처럼 생긴 것을 사서 썰매 발에 박아 넣어서 썰매를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 동네의 아이들은 생각도 못 할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썰매는 철사로 만든 썰매보다 두 배는 빨랐다. 학교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잘라 와서 대못을 거꾸로 박아 창도 만들었다. 소나무는 잘 갈라지고 못도 잘 들어가지 않아 아카시아나무나 미루나무가 썰매 창으로는 제격이었다.

     

이렇게 겨울 채비를 마치면, 섣달, 정월의 매서운 바람에 천방 둑 아래 무논이 꽁꽁 얼거나 가장자리 강물이 돌아 고여 있는 자리가 얼어붙으면 햇볕이 조금은 따스한 날, 창끝에 썰매를 걸어 어깨에 둘러메고 썰매 지치러 나갔다. 조금 잘 타는 아이는 외발 썰매에 기다란 창을 사타구니 사이에 끼우고 달려 나갔다. 서서 타는 외발 썰매는 속도가 엄청 빨라서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대부분은 두 발 썰매였다. 철공소에서 산 무쇠로 된 스케이트 날을 나무토막에 박아, 신발을 고무줄을 칭칭 감아서 스케이트를 지치는 것처럼 얼음 위를 타는 아이도 있었다. 그나마 그런 스케이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은 공무원들이 많이 산다는 윗동네 아이들이었다.

     

썰매가 시들해지면 차가운 얼음물속에 손을 넣어 물고기를 잡았다. 날이 추우면 물고기도 돌 아래에서 조용하다. 여름보다 잡기에 힘도 덜하다. 겨울 강 속에는 힘 잃은 붕어만 가끔 보일 뿐이다. 몇 마리 잡아 모닥불에 구워서 입가에 숯검정을 묻혀가며 한 마리씩 먹었다.

     

설이 지나고 햇볕이 조금씩 따스해지면 얼음은 또 한 번의 요술을 부려 출렁출렁 ‘고무 얼음’을 만들고, 그것을 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무 얼음은 깨어지지 않고 울룩불룩 출렁거리며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어느 한 놈은 얼음 구덩이에 빠져서 징징 울면서 집으로 가거나, 발가벗고 덜덜 떨면서 모닥불에 옷을 말려야 했다. 조심하지 않고 옷을 말리다가는 군데군데 누렇게 태우기 일쑤였다.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조금씩 날이 풀리면 강으로 얼음 뗏목을 타러 갔었다. 장화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고무신 하나로 몇 년을 버티던 시절에 장화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었다. 기다란 장대를 가지고 얼음 위에 올라타서는 얼음을 마당 크기만큼 자르면 아이들을 태운 얼음 뗏목은 강물을 따라 서서히 내려갔다. 장대를 삿대 삼아 방향을 잡으며 흘러 흘러가다가 물이 깊어지려 하면, 얼른 내려 강물에 뛰어들어 첨벙첨벙 모래밭으로 걸어 나왔다. 발목이 끊어질 듯하지만 한참을 있으면, 희한하게도 발이 후끈거렸다. 그 느낌이 좋아서 겨울바람이 스쳐 가는 모래밭에 앉아 한참이나 떠들었다.

     

바람이 거센 날엔 동네 아이들은 철로 변에 있던 농협 창고 담벼락에서 바람을 피하며 무더기로 모여 '삼치기***'를 했다. 삼치기를 하는 구슬 사이에는 십 원짜리 동전도 몇 개쯤 보였다. 삼치기를 잘하는 친구는 늘 정해져 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고 모두가 흔들어 대었다. 짤랑짤랑. ‘1가고 2..., 3이다! 졌다! 에이~’. 이것도 지겨워지거나, 한 아이가 모두 따면 판은 끝나고 하릴없이 메마른 겨울 땅을 툭툭 차다가 가끔은 철둑 건너편 동네 아이들과 물렁물렁한 고무공으로 축구도 한판 했다. 


동네 나지막한 초가집, 슬레이트집 위로 밥 짓는 연기가 무럭무럭 올라오고 어둠이 설핏설핏 내리면 골목골목마다 ‘오빠야! 들어와 씻고 밥 먹으래’하는 동생들의 목소리가 낭랑했고, ‘이놈의 자식 손모가지 봐라. 까마귀가 보면 할배요~ 하겠다’는 어머니들의 높은 목소리가 골목 안을 가득 채웠다.


겨우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손등은 갈라지고 터지고, 이럴 때는 오줌에 손을 씻는 게 최고였다. 달빛이 하얗게 부서져 내려온 마당에 나가서 세숫대야에 오줌을 받아 손을 씻었다. 이렇게 하면 희한하게도 다음날이면 손이 보들보들해졌다. 방으로 퍼뜩 들어오는 손이 문고리에 쩍쩍 달라붙는 차갑고 맑은 겨울밤이었다. ‘안티프라민’이나, ‘맨소라뎀’은 아직 그 이름조차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소화기가 아직 여물지 않은 나이는, 밤늦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때때로 자연이 부르곤 했다. 마당 귀퉁이에 있는 변소를 깜깜한 밤을 가는 일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마당에는 아이의 무서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하얀 달빛이 먼저 와있었다. 글을 읽어도 될 정도의 새하얀 달빛에 무서움은 멀리 가버렸고, 아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고 들뜨게 하기도 했다. 쇠 끝 같이 차가운 겨울밤, 쨍하고 떠 있는 달과 마당을 환하게 비치던 빛의 황홀경은 오래 가슴에 남아 있지만, 그 이후로는 그런 달빛을 볼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데 어둡다고 하시며 어머니는 책상 위에 호롱불을 올려주시곤 했다. 호롱불 올려놓을 받침대가 달리 있으랴. 호롱 밑에는 ‘돈표 성냥’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한 점 불빛을 내 앉은뱅이책상이 차지하면, ‘돈표 성냥’ 위의 호롱불이 가물가물 타는 방안에는 희미한 불빛에 커다란 그림자만 넘실거렸다. 호롱불 심지를 돋우어 올리고는 기름 묻은 손가락을 머리카락에 쓱 닦으면 그리 싫지 않은 기름 냄새가 났다. 그을음이 실루엣처럼 올라오며 방안은 조금 더 환해지지만 이내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어쩌다 머리끝이 호롱불 가까이라도 가면 ‘지지~짓’하며 노린내가 풍겼다.

     

긴긴 겨울밤. 밤이 깊어지면 골목 안에는 처량하고도 낭랑한 소리가 천천히 지나가곤 했다. ‘차압 싸~알 떠~억!.........메미~일 무~욱“.... 멀리서 다가와 내 귀를 맴돌고 그 소리는 다시 골목길 멀리에 사라졌다. 그러나 한 번도 사 먹어보지 못했던 찹쌀떡, 메밀묵이었다.

     

자식들이 무언가 침을 삼키는 소리를 알아채신 아버지는 주섬주섬 옷을 걸치시고 마당으로 나가셨다. 초겨울, 김장독 묻을 때 같이 묻어놓은 마당 한구석의 ‘무 구덩이’에 긴 창을 넣어 무 한 개를 찍어 오셨다. 대충 껍질을 벗기시고, 위에서 밑으로, 무의 하얀 부분과 맛있는 초록색 부분이 고루 섞이게 어슷하게 길게 썰어놓으면, 내복 바람에 창자까지 오들오들 떨면서도 누나와 동생과 서로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런 시간쯤이면 가끔 집 앞 전봇대 위에서 부엉이의 낮고 긴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글지글한 아랫목에 누워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놓은 자식 놈들 얼굴을 흐뭇하게 보시며, 임청각 도깨비 이야기나, 멧돼지가 여자를 끌고 가서 아내로 삼았다는 아버지의 옛날이야기는 나와 동생들의 졸린 눈을 감지 못하게 만들었다.


종일 골목을 쏘다녔던 고단한 몸은 밥숟가락 놓기 바쁘게 꿈속으로 가라고 했다. 지지~직 찌~직.....‘19석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나오는 ‘왕비열전*****’을 아무리 들으려 해도 자꾸만 감기는 무거운 눈꺼풀은 어찌할 수 없었다. 두어 시간 자다가 일어나서 요강에 묵직한 오줌을 쏟아 내면서, “왕비열전 어떻게 되었어? 윤비가 사약을 받았나?“, 하며 내려앉은 눈을 비볐다. 바깥에는 삭풍이 불어대는지, 흰 눈이 내리는지 따뜻한 방안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새벽녘 구들장의 싸늘함에 어렴풋이 잠이 깰 때쯤이면, 어김없이 벌써 아버지가 넣는 새벽 군불에 장작이 투닥투닥 타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처럼 그 소리를 들으면 다시 따끈해지는 아랫목으로 파고들고 또다시 아스라하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골목 안에는 벌써 ‘도~옹~태요!, 임연~~수요! 카~알치요!’, 외치는 생선 장수의 구수한 목소리가 또 다른 하루를 열고 있었다.

     

이렇게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이면, 어린 시절의 ‘차압 싸~알 떠~억!...메미~일 무~욱“소리가 오늘 밤도 귓전을 맴돌지만, 골목 안으로 멀어져 멀리 끊어져 가는 그 소리처럼 자꾸만, 자꾸만 그 시절이 멀어져 간다.  



*다시겟또 – 술래 한 명을 정하고 나머지는 어리론가 숨는데, 술래가 찾아 잡으면 본부에 잡혀 있다가 같은 편이 술래를 피해 잡힌 아이들의 손을 터치하면 다시 도망갈 수 있다. 다 잡히면 술래가 바뀐다. ’다시겟또‘는 일본어 ’たすける,타쓰케루(구조하다)‘에서 온 듯하다. 술래에게 잡힌 자기 편을 구하는 놀이였으니까. 이 놀이는 체력단련에 뛰고 달리는 놀이로 체력단련과 숨고 찾는 과정에서 두뇌 개발에도 좋은 놀이이다. 서울에서는 ’다망구’라고 한 모양이다.

     

**사이방 – 얼마 전 드라마로 유명해진 ‘오징어 게임’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사이방‘이라고 했는데, 어원을 찾지 못하겠다.

      

***삼치기 - 청소년들이 동전이나 구슬을 가지고 하는 놀이.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동전이나 구슬을 양손 안에서 흔들다가 한 손에 잡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안에 있는 동전이나 구슬의 개수를 알아맞히는 놀이이다. 흔히 짤짤이라고 한다.


****19석 트랜지스터 라디오 - 라디오의 증폭회로에 들어간 트랜지스터 개수. 개수가 많을수록 소리가 선명하고 값이 비쌌다. 19석, 24석 등이 있었는데, 이웃집은 몇 석 라디오인지를 서로 물어보기도 했다.

      

*****왕비열전 - (기억으로) 60년대 말~70년대 초에 MBC라디오에서 방송한 조선 왕비의 궁중 역사(야사)를 다룬 당시 최고  인기 라디오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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