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번째 암흑기를 지나

by 바닷물

2025년 1월은 내게 찾아온 99번째 암흑기였다. 2017년을 기점으로 내 인생에 암흑기는 셀 수 없이 자주 찾아왔고 참으로 오래 이어져왔다. 특히 매년 겨울이 되면 나는 알 수 없는 권태와 무력감에 빠져 이불속으로, 깊은 동굴 속으로 파고들었다.


2019년 1월엔 수능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재수를 하겠다며 기숙학원을 알아보러 다녔고, 2020년 1월엔 재수에 실패한 뒤 성적에 맞춰 대학 원서를 넣었으나 그해 3월 코비드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듣던 중 자퇴를 신청했다.


그렇게 시작된 삼수 기간에는 가까운 도심으로 나가 자취방을 구해 독학재수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음식과 청소는 주말마다 어머니가 찾아와 해결해 주셨다. 그 당시 나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기생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21년 입시까지 실패했고 드디어 더 이상의 수능 응시를 포기했다.


대신 이번에는 편입으로 눈길을 돌렸다. 취업을 위해 간호학과로 진학하였으나 학교가 너무 작았다. 취업은 크게 문제 되지 않을 학과이니 동일계 편입을 노려보자, 해서 22년 여름엔 분당 큰이모댁에 객식구로 얹혀살며 강남에 위치한 편입학원까지 통학하며 지냈다. 그해 여름의 나는 꽤나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2023년 1월, 편입 결과발표가 나지 않자 나는 스스로 내 인생은 실패작이며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둠뿐이라고 판정했다. 매일을 죽지 못해 살았다. 죽고 싶었지만 내겐 언제나처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이불속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던 2월의 어느 날, 편입 추가합격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네임드 대학교로 진학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정신이 산만했고 앉아있어도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았다. 이상하게 매일 툭하면 눈물이 났다.


2024년 1월, 나는 뇌파검사 따위를 거쳐 우울증과 집중력 저하 진단을 받고 약 복용을 시작했다. 오래도록 미뤄온 나의 행복을 위한 일들을 시작했다. 그 시작은 운동이었고 또 외모를 가꾸는 일이었다. 대학 동기들과의 교류를 위해 SNS 계정도 만들었다. 여름방학엔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익숙지 않은 자극들에 적응하고 내 세계를 넓혀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우울증 회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내 발목을 잡게 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어떤 거대한 힘이 나를 가로막는 것처럼 계획이 계속해서 틀어졌고, 나는 그 계획의 끄트머리를 어떻게든 붙잡아 되돌려보려 발버둥 쳤다. 그 간절한 몸부림은 물가에 버려진 물고기의 것처럼 무용했다. 그리고 이 글의 배경이 되는 2025년의 1월, 나는 99번째 암흑기를 맞아 끝없는 폭식과 콘텐츠의 홍수 속에 나 자신을 방류했다. 취업으로 모자라 졸업조차 하지 못한 내 처지를 비관하며.


내가 이번 암흑기를 99번째로 구분한 이유는 앞으로 내 삶에 잔류한 암흑기가 하나뿐이길 염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경험해야 할 암흑기의 총량이 있다면 그건 100번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인간의 염원은 실현되기 어려운 바람일 뿐이겠지.

언제나처럼 나는 이 암흑기를 지나 불볕이 내리쬐는 전장으로 나아가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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