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럼 정말 너네 집으로 간다. 보름 정도 있을 건데 진짜 너네 집에 있어도 괜찮은 거지?"
"나 싫으면 싫다고 하는 거 몰라? 우리 집에 있다가 불편하면 호텔 잡아서 나가면 되잖아~."
나의 고등학교 베프 애니와의 통화 내용이다. 한국에서 힘든 일도 좀 있고 바람도 쐴 겸 멜버른에 오는 것까지는 결정을 했는데 우리 집에서 지내도 괜찮은지에 대해서 몇 번이나 확인, 또 확인을 하고 애니는 그렇게 비행기를 환승해서 (당시 멜버른은 직항이 없었다) 우리 집으로 왔다. 나도 너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거라 기대와 설렘이 컸다. 물론 요리 실력이 꽝이라서 끼니 걱정이 조금 되기는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제이든에게도 상황을 얘기해 줬다.
"제이든, 엄마 고등학교 친구 애니 이모가 한국에서 우리 집에 놀러 올 거야. 와서 한 15일 정도 있을 거고."
"엥? 15일이나 있는다고? 그럼 잠은 어디서 자?"
"우리 방에서 같이 자는 거지. 우리는 침대에서 자고 애니 이모는 그 옆에 바닥에 요 깔고 잘 거야."
처음에는 살짝 어색함이 맴돌았던 제이든과 애니는 나중에는 엄청 정이 들어서 나중에는 팔베개를 해주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6월 2일부터 보름 정도 머무르기로 하고 호주에 왔던 애니는 체류 기간을 연장해서 내 생일도 함께 보내주고 6월 28일에 호주를 떠났다.
애니가 함께 하는 동안 우리의 초록색 헐크 감사노트도 훨씬 더 풍부해졌다. 애니가 한국에서 올 때 제이든 선물로 터닝메카드를, 내 생일선물로 목걸이, 귀걸이와 텀블러 등을 사 왔는데 우리 둘 다 신나 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랜만에 노트를 들쳐보니 그때 기억에 미소가 지어진다.
애니가 호주에 도착한 6월 2일과 다음날 3일의 감사일기, 28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마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써내려갔다.
애니가 오고 나서 우리 집에도 활기가 돌았다. 그동안은 내가 제이든의 사진만 찍어주고 아무래도 정해진 루틴대로 지냈다면, 애니 덕에 멜버른 시내에도 같이 놀러 가고 제이든과 둘이 함께 찍은 사진들도 많아졌다.
제이든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사실 한국어로 재잘재잘 떠들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는 집에 오면 바쁘게 집안일부터 하고, 숙제와 할 일을 했는지부터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이모가 밤마다 재미있게 놀아주니 저녁이 되면 이모랑 뭐 하고 놀까 하고 제이든 눈에 기대에 찬 장난기와 웃음이 가득했다. 사실 나도 애니가 제이든을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애니는 7살 제이든과 함께 침대 위로 제이든 밀기, 블록 위로 높이 쌓기 같은 즉석에서 만들어낸 게임을 하면서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함께 놀았다. 유치할 만도 한데 그렇게 함께 하는 둘의 모습이 나로서는 신기하면서도 참 고마웠다.
애니에게 포켓볼을 배우는 제이든(좌) 지하철에서도 애니 옆에 앉아 이모의 DSLR 체험중(우)
애니가 오고 나서 힘들었던 점 딱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새벽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다음날을 위해 아쉬워하며 마지못해 잠을 자러 들어가는 시간이 새벽 2-3시였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대학에 가고 각자 결혼한 이후에 우리가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그동안의 공백을 호주에 함께 있는 동안 매우 인텐시브 속성 코스로 깊이 있고 빠르게 나눈 것 같다. 그동안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어 그 스트레스가 몸에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던 나에게 애니의 방문은 단비 같은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