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든과 나는 매주 수요일 티미네 집에 수영이 끝난 후 저녁을 먹으러 놀러 갔고, 제나 언니네 집에도 자주 놀러 갔다. 그리고 제이든이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놀러 가는 일도 점점 늘어났다. 물론 제이든의 친구들은 다 주택(House)에 살았다. 1층집, 2층집, 마당이 넓은 집, 으리으리하게 큰 집, 아담한 집, 독채와 별채가 있는 집 등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는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나지막한 나 홀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ㅊ
5월까지 우리 집에 놀러 온 제이든의 친구는 티미 한 명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보통은 친구 집에 한 번 놀러 가면, 우리 집에서도 친구를 한 번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보통 마당에서 뛰어노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무슨 아파트 살아?"
"응? 나 ㅇㅇ 아파트."
"아 그래? 몇 동인데?"
"응? 아... 24동."
"그래? 24동이면 XX평이네~"
"너네 아빠 차는 뭔데?"
.......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성동구에서 잠실로 전학 왔다. 그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서 받았던 그 질문들이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다. '이게 왜 궁금하지?'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우리 집 재산과 내 성적에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이전 학교에서 부반장이었고 공부를 잘했다고 선생님께서 처음 소개를 하셨기 때문인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며 "안녕? 나는 XXX야, 너 저번 학교에서 부반장이었다며? 잘 지내보자~" 하던 여자 친구, 복도에서 어느 아파트 몇 동에 사는지 (몇 평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빠 차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 다 고스란히 기억난다. 하지만 첫 시험에서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오자 아이들은 더 이상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친구들을 초대하면 아빠도 없이 엄마랑 원룸에 사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지 지레 겁을 먹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제이든을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놀았던 (호주에서는 친구랑 약속을 잡아서 노는 것을 play date이라고 한다)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플레이 센터 (play centre)에 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키즈 카페인데 우리나라는 건물 안에 한 층 정도 규모가 일반적이라면 호주는 보통 한 건물을 통째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입장권과 간식을 같이 사주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 때 우리가 다녔던 플레이센터를 검색해 보았다. 7년 전 방문한 장소라고 구글에서 알려주는 걸 보니 반가웠다.
티미와 다른 남자아이들 2명과 함께 제이든은 신나게 놀았다. 제이든이 학교 수업은 다 따라갈 수 없었지만 아이들과 제법 놀 때는 의사소통도 잘 되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흐뭇했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먹는 모습을 찍어서 엄마들에게 보내주고 아이들도 잘 집에 데려다주었다.
아이들이 신나서 감자칩으로 치얼쓰~~ 하는 모습
그렇게 하고 나니 자신이 좀 붙었다. 그날 함께 놀았던 친구를 집으로 한 번 초대했다. 티미 이후에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온 친구였다. 처음 집에 들어와서 "집이 이게 다예요?", "침대가 왜 이렇게 낮아요?" (우리는 침대 프레임은 사지 않고 매트리스만 사서 그 위에 잤다), "제이든은 엄마랑 같은 침대에서 자요?" 등등 갸우뚱하며 질문을 몇 개 던지고는 거실에서 칼싸움을 했다. 그리고 제이든이 한국에서 가져간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가지고도 잠깐 놀았다. 친구가 스시(호주에서는 김밥도 스시라고 부른다)를 좋아한다는 말에 김밥을 말아서 주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활동적인 친구라 마당이 없는 집에서 노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좁은 집에서 자꾸 칼싸움을 하다 보니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계속 '답답하다, 밖에서 놀고 싶다'는 말을 해서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띵똥~"
"누구세요?"
"엄마, 나야~~"
그 친구네 집에 도착했고 아이 엄마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어머~ 일찍 왔네. 어서 와요 니콜~ 잠깐 들어왔다 갈래요?"
"아 네네 좋아요."
문이 열리자 제이든 친구가 먼저 쑥~ 본인 집으로 들어갔다.
"킨, 제이든네서 재밌게 놀았니?"
제이든 친구 엄마가 물었다.
"어? 아~ 엄마! 제이든은 되게 쪼끄만 방에 살아."
(Jaden is living in a tiny room...)
'집'도 아닌 '방'에 산다고 툭 내뱉고는 자기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작은 게 소중할 때도 많아. 다이아몬드도 얼마나 작니..."
그 엄마도 순간적으로 상황 수습을 위해 한 말이었겠지만, 그 상황이 둘 다 참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나는 제이든이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차를 마시고 가라고 했지만 그 상황을 얼른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살면서 아이가 험한 꼴을 당하거나 가슴 아픈 일을 만나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과의 만남, 호주라는 광활한 자연이 주는 즐거움이나 자유로운 학교 생활, 그리고 영어는 덤으로 얻어갈 수 있게 해 주려고 호주에 왔는데 내가 여기서 돈 쓰면서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또 물밀듯이 밀려왔다. 특히 제이든이 대다수의 사람과 다르게 생기고, 또 다른 대다수의 친구들이 사는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작은 곳에 사는 것에 대해서 속상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더 악착같이 호주에 있는 동안 좋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기 위해서 힘을 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