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겐 Jaden이 소중할까? 회사가 중요할까?
아파트에 이사 와서 며칠 안되었을 때, Jaden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회사 안 가도 돼요?"
"그럼~ 엄마 1년 동안 회사 안 가지."
"아 진짜??? 근데 우리 호주는 왜 왔어?"
아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회사를 1년 휴직하고 호주에 왔기 때문에, Jaden에게 그 얘기를 자연스럽게 해 주기 위해 나도 Jaden에게 물었다.
"엄마에게는 Jaden이 소중할까, 회사가 중요할까?"
한참을 가만히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던 Jaden이 대답했다.
"...... 난 모르지......"
"으잉? 그걸 어떻게 몰라? 엄마한테는 당연히 Jaden이 소중하지!!"
"그래? 말해준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대화를 나누던 그날의 장면이 내 머릿속에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남아있다.
Jaden의 표정과 분위기, 내가 느꼈던 충격까지도.
그렇다.
나는 아들에게 "엄마는 회사보다 네가 중요하고 소중해"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알 거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Jaden의 파랑의자
Nicole의 빨강의자
이사 와서 제일 먼저 구입한 가구가 사진 속 책상과 의자 두 개였다.
그날도 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얘기했었다.
호주에 있는 동안 저 의자에 항상 둘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일기도 쓰고 공부도 했다.
물론 지지고 볶기도 많이 했다.
띵똥~
"들어오세요. 베이비시터 면접 오셨죠?"
"네~, 어머 이뻐라~. 이 아이예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이 거의 다 지나가고 복직을 앞둔 상황,
입주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위해 공고를 내고 면접을 보느라 바쁜 나날이었다. 맘이 잘 맞는 분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각오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가 싶을 정도로 찾기가 어려웠다.
들어오자마자 손도 씻지 않고 덥석 아이를 안아 올리는 분도 있었고, 본인은 타워팰리스에서 육아만 담당했었기 때문에 집안일이나 음식은 일절 할 수 없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내가 베이비시터와 가사도우미 두 분을 고용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마음이 심란했다.
그날은 결혼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시이모(시어머니의 여동생) 가족이 Jaden을 보러 놀러 온 날이었다.
신혼 2년 동안 이모댁 근처에 살아서 그런지 여느 시이모와 조카며느리 같지 않게 가깝게 지냈다.
주말이면 시이모부와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시이모지만 '이모'라고 부르는 그런 사이였다.
이모와 동네를 거닐다 보면 이모가 아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마주친 분들과 인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시는데,
내 생각에 이모가 맘만 먹으면 아마 100m를 가시는 동안 1시간도 충분히 쓰실 것 같다.
이모는 그렇게 아는 사람도 많고 성격도 좋고 재미있는 분이다.
그런 이모가 나는 지금도 너무 좋다.
그날 만났던 베이비시터님도 역시나 우리와는 조건이 맞지 않았다.
"하아... 이모, 아기 봐주실 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복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진짜 큰일이네요."
......
"아기...... 우리가 봐줄까?"
원래 이모댁 근처에 살 때도 아기를 낳으면 봐주신다는 얘기는 오갔었지만, 우리가 이사를 와서 그 옵션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이모, 진짜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Jaden은 2살부터 호주에 가기 전인 7살까지 평일에는 이모댁, 주말에는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생활을 했다. 이모네도 자녀가 셋 있었는데 처음 Jaden이 그 집에 갔을 때, 첫째 딸은 어린이집 선생님, 둘째 딸은 대학생, 막내아들은 유학 중이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모두 Jaden을 사랑받는 늦둥이 가족으로 함께했다.
Jaden이 말을 시작하면서 Jaden은 이모도 엄마, 나도 엄마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모댁에 있는 아이들은 당연히 누나, 형이라고 불렀다. 사실은 외아들이지만 감사하게도 Jaden의 어린 시절은 대가족 안에서 자란 셈이다.
이모네 있는 동안 Jaden은 어린이집은 건너뛰고 유치원부터 단체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때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 감기에 자주 걸리기 마련인데, Jaden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연에서 뛰어놀며 지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금요일이면 Jaden을 데리러 이모네 집에 가고, 일요일이면 다시 데려다주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웃으면서 해맑게 빠이빠이~를 하지만, 어떤 날은 엄마 아빠 가지 말라며 울며 붙잡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 아빠는 월요일에 회사에 가야 해서 빠이빠이 해야 한다고, 엄마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얘기해주곤 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래서 Jaden은 엄마에게 회사는 정말 중요한 것,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 날이면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었다. 회사일이 바쁠 때면 밤 12시, 새벽 1시에 귀가할 때도 있어서 당장 데려올 수도 없었지만, 아이가 학교도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아이가 주말에 열이라도 나면 덜컥 겁이 나서 이모네로 달려갔고, Jaden과 소위 '지지고 볶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짧은 주말 동안이니 최대한 같이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마음 한편에는 늘 죄책감과 불안함이 있었다.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가?' '아이와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되는 건가?' 싶다가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뭘...' 하며 또 현실과 타협했다.
하지만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다. Jaden이 이렇게 커서 자아가 생기게 되면, 이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을 해도 단 한 사람만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믿어주면 살아갈 힘이 있다고 했는데, 그 역할을 엄마인 내가 해줘야 하는데...... 나는 Jaden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맛있는 거 사주고, 갖고 싶은 장난감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닐까?
......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아이와 둘이 호주행을 선택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내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나 싶기도 하지만, 나에게 Jaden과 호주에서의 1년은 최대한 많이 지지고 볶으며 진정한 엄마와 아들이 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좌충우돌하긴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 Jaden, 그리고 우리 사이가 단단해진 너무나 소중한 1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