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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Jul 03. 2022

35세까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

#10

20대 후반부터 정체불명의 초조함이 생기더니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하고 주변 사람들도 언제 결혼하냐고 묻고, 이 세상이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OO씨, 올해는 국수 먹게 해주는 거야?”


이즈음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사회에서 정한 일률적이고 정형화된 가족제도를 만들어놓고, 이렇게 가지 않으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나를 압박했다. 나 역시도 결혼이란 제도권 안에 나를 껴맞추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꼭 결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나 혼자서 하나? 결혼할 남자가 있어야 하지!


안정적인 직장에 입사한 뒤로는 정말 미친 듯이 소개팅을 했다. 나는 남자를 볼 때 내적인 면보다는 외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지금 결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남자인지가 더 중요했다. 당연했다. 결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고 했고, 항상 모든 상황을 철저한 계산 아래 두고 행동했다. 도움이 되는 관계,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 나의 연애란 거의 그랬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이 ‘결혼생활 유지’인가? 그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때의 나는 인생의 목적이 결혼생활 유지도 아니고 ‘결혼 그 자체’인 한심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공부도 할 만큼 하고 제법 똑똑하다는 말도 듣고 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헛똑똑이’이었다. 결혼 시장에서 잘나가는 남자에게 잘 팔려 가는 게 내 능력인 줄 알았던 헛똑똑이.

친구들이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와의 결혼 소식을 알리면 그것이 그렇게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 더 잘나가는 남자와 또 소개팅하고 연애를 했다. 나의 결혼식 날 많은 하객 앞에서 행복을 뽐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주님은 왕자님과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동화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였다. 이런 부류의 동화들은 모두 결말이 똑같다. 어린 시절부터 이 새빨간 거짓말 덕분에 결혼을 행복의 종착역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고, 또 한국 사회가 아무리 늦어도 여자 나이 30대 중반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무슨 하자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인생의 어떤 결핍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른넷, 어느 순간 돌아보니 친구들이 나 빼고 모두 결혼한 것이었다.

동화가 끝난 뒤 공주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결혼, 그냥 몇 시간짜리 이벤트이다. 그 후가 진짜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결혼이 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줄 거라 믿었다. 선배들이 ‘결혼은 현실이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와닿지 않았다. 아마 20~30대 여성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암이 내 인생을 멈추게 했고, 그로 인해 파혼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드디어 결정한 남자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내 옆을 지켜야 할 그 남자가 내가 가장 힘든 순간 내 손을 놔버렸다. 친구들은 하늘이 날 구한 것이라 했다. 이혼보다 파혼이 낫고, 그런 놈이라면 결혼해도 뻔하다는 것이었다.

35세를 넘기지 않고 결혼에 성공하려고 서두른 탓이었을까? 비로소 천천히 생각해보니 그런 식으로 쫓기듯이 하는 결혼은 나중에 후회만 남길 것이었다.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하고, 내 인생을 자꾸 남의 인생과 비교하면서 부족한 것을 찾아낼 때 우리는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참 감사하게도 암으로 인해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온전히 집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인생의 고유함과 진짜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신기한 건 내 인생과 나 자신에 집중하다 보니 예전처럼 연애에 대한 조급증이 일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어디야?’ ‘뭐 먹었어?’ 묻고 스킨십하고…. 이런 관계를 얻기 위해서 내가 겪어야 하는 감정노동을 생각해봤을 때, 나를 위해서 뭐가 더 나은지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늘 연애와 결혼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결혼이라는 허상을 내려놓고 나니 내 인생의 새로운 방향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더 많은 성취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베풀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성이다.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그 본성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정을 꾸리든 꾸리지 않든, 엄마가 되든 되지 않든 간에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면 삶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진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근본적인 선한 마음이 있다라는 것이다. 꼭 가정을 꾸려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 때 삶은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해지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저마다 인생의 목적과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과 같은 매우 중요한 결정 앞에서 우리는 굉장히 신중하게 자신에게 꼭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사회에서 주어지는 압박감 때문에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면 결국은 후회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삶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행복과 고유한 소명 등을 충분히 고려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누군가는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때의 나도 그런 말이 너무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 전반에 깊게 자리 잡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과 고정관념. 이 안에서 다수가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눈초리와 오지랖을 받았을 누군가가 본인에게 옳고,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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