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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Jun 25. 2022

그놈의 행복

#9

커버 이미지: 건강했던 시절 엄마와 유럽여행,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앞, 2017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살아온 거다. 그놈의 행복. 나는 행복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을 느끼는지 모르겠더라. 사실 나는 기쁜 감정보다는 우울감을 더 잘 느끼는 편이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이건 내 기질인 듯하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놈의 성공. 그래서 성공하고 보자 한 거다.


그런데, 꼭 행복해야만 해?


가만 보니 삶의 목표가 행복이었던 거다. 나는 목표지향적 인간이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참 많이도 노력했다. 행복마저도 경쟁해야 하는 것처럼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행복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세운 내 계획은 인서울 대학교를 졸업해서 안정적인 직장에 입사한 뒤, 35세를 넘기지 않고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기회가 되어 석사학위까지 받았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공공기관에 입사했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결혼뿐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을 때 행복했었나? 그랬던 것 같다.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는? 뿌듯했지만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해서 끝냈다는 해방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그때는 꽤 많이 기뻤던 것 같다. 정말 선망하던 회사였다. 하지만 곧 원하지 않는 업무가 쏟아지면서 회사 다니는 게 괴로워졌고 ‘번아웃 증후군’*까지 왔었다. 분명 행복했었는데 그 행복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주말마다 소개팅이나 데이트를 하고, 연애도 제법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행복하기는커녕 주말마다 몸과 마음이 긴장되었다.


그럼 과거에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라,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대부분 행복했던 것 같은데? 심지어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들은 꼭 ‘좋은’ 순간이 아니기도 했다. 아무 음식이나 먹고 소화할 수 있다는 것, 좋든 싫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가슴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순간들.

행복은 늘 그곳에 있었다. 문제는 내가 행복에 대한 환상 때문에 좋은 순간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행복의 유형을 원했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꿨지만, 그 사랑이 내 행복을 책임져줄 나의 안정과 사회적 지위 안의 사랑이길 바랐다.


❚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대부분 문제는 행복에 대한 나의 잘못된 기대에서 시작되었지만, 인생의 목표를 행복으로 두는 것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목표를 행복으로 두면, 행복에 집착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안해진다. 꼭 행복해야 삶이 아니다. 삶은 기쁠 때 실컷 웃고, 슬플 때 실컷 울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 또한 삶이고, 우리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시련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또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다. 그 평범한 순간순간이 내 삶의 최고의 순간들이기도 했다. 그때 이미 나는 진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나는 때로는 행복하다. 그리고 슬플 때도 있다. 만족스러울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으며, 우울할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매일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고 느끼는 상태. 김도인 《숨쉬듯 가볍게》 p.121, 웨일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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