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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Jul 17. 2022

고통은 은총이다

#11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제법 겪었다고 생각했다. 고난이 닥칠때마다 내가 잘해서, 내 힘으로 극복해서 이만큼 온 줄 알았다.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할 때만 해도 나는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유방암이 재발했다.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8번의 항암치료와 30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수많은 부작용을 겪었다. 그로 인해 벌어진 모든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폭풍이 몰아쳤다. 이상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기 시작할 때쯤, 불쌍한 나를 위해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이 기도해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정작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나도 하느님께 매달려볼까?


하느님을 찾기 시작하니 은총이 자연스럽게 나를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 "나는 바리사이입니다"


'바리사이'는 극도로 엄격한 율법 해석과 실천을 내세우던 학파, 또는 그 학파에 속한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적대시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바리사이였다. 나는 우쭐대는 교만한 사람이었다. 바리사이란 '분리된 자'라는 뜻을 갖는다. 이들은 대다수인 유다인들과 소수인 자신들을 구별하여 '난 너희들과 다르다'라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늘 예수님과 대립했다. 규칙과 율법을 지키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사랑'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참 잘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사랑, 연민, 연대, 공동체 의식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하고 무능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니 처음에는 부끄러움이, 다음에는 후회가, 그다음에는 버거운 감사가 일었다. 사실 나는 너무 비참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내가 잘한 것이 없어도 나를 돌봐주시고, 큰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고, 지금도 이렇게 회개하게 함으로 나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내가 나를 잘못 사랑함으로 나를 병들게 했지만, 이제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나를 살릴 뿐 아니라 주님의 사랑도 얻었다.


지금 나의 삶은 내가 만들어온 것이다. 내 삶은 내가 바꿀 수 있고, 나만 바꿀 수 있다.


내게 온 시련들은 주님이 내게 주신 기회이다. 고속도로 같은 평탄한 길을 빨리 달리고 싶었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길 위에 서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길을 허락하신 이유는 내 교만에 제동을 걸고 주변을 돌아보라는 것이 아닐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미처 몰랐지만,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주는 상처를 줄이고,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 고통이 필요한 이유


어느 정도의 고통과 슬픔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 죄가 세상에 고통과 슬픔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온전한 신이지만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고통)를 주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인류의 공동 구세주가 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슬픔을 은총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따르는 힘든 상황에 놓일 때,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다. 내가 유방암에 걸린 것, 승진에서 밀려난 것, 유방암이 재발하고 전이된 것, 파혼한 것 등은 어찌 보면 내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일이다.


고통의 경험은 참 감사한 일이다. 고통의 시간이 우리 삶에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었음을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시련과 고통은 우리 마음을 이기심과 교만으로부터 정화해준다. 그만큼 내적으로도 자유로워진다. 덤으로 고통을 견뎌낼수록 다른 사람들을 더 공감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나는 이 고통이 내 영혼을 강하게 만들며, 내 믿음을 확고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암 환자인 삶은 건강했을 때만큼이나 풍요롭다.


고통이 클수록 열매는 달다. 그러니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고통 속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건 어떨까?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기지 못할 고통은 주지 않으신다. 그렇게 고통을 이겨낼 때 사랑이 커지고, 그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1: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23364&cid=69168&categoryId=50768

** 홍성남 '바리사이 콤플렉스'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가톨릭신문, 2022: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63717

*** 클래런스 J. 엔즐러, 박정애 역 《나를 닮은 너에게》 p.322, 바오로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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