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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Jun 04. 2022

주는 마음, 받는 마음

#7

“실례합니다. 말씀 좀 물을게요. 여기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아, 잠시만요. 저도 잘 몰라서 핸드폰으로 검색해보고 알려드릴게요. 여기서 가깝네요. 이쪽으로 3~4분만 쭉 걸어가시면 나와요.”


길 가다 마주친 할아버지. 땀을 뻘뻘 흘리시며 내 눈치를 보다가 길을 물어왔다. 예전의 나라면 잘 모른다며 차갑게 지나쳤겠지만. 찾는 장소가 바로 근처인 것 같았고,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길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길을 알려드리니 정말 고맙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꾸벅하고 가셨다. 오늘 내가 베푼 아주 작은 사랑이다.


나는 타인에게 무관심했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가 내 신념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살았고, 우리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믿었다. 요즘 세상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무관심을 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과 관심 덕분에 이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남의 도움 따위는 받을 일 없을 거라 믿었던 내가 약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얼어있던 내 마음을 녹인 것이다. 외로운 투병 생활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무관심은 덕이 아니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오히려 무관심이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은 생각하는 것보다 그 범위가 넓다. 낯선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 엘리베이터를 기다려 주는 것, 친구와 과자를 나누어 먹는 것, 옷이나 가방을 빌려주는 것, 환경을 생각해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것, 분리수거에 성실히 임하는 것, 모르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등.

특히 사람을 대할 때 마음가짐을 따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라는 밝은 마음. 카페 직원에게 다짜고짜 주문부터 하는 게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부터 한다.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먼저 인사하면 가게 직원들의 얼굴도 미소로 번진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면 내 기분이 더 좋아진다.


故 이태석 신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가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한, 그리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아름다운 영혼, 영원히 남아 영생을 누릴 고귀한 영혼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다. 그동안 나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 소중한 만남을 대충 흘려보낸 적이 많았다.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것일까? 아니면 타인을 경쟁상대로만 바라봤던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더는 소중한 만남을 무례하게 대하고 싶지 않다.


흙 속의 진주


인간에게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이 숨이 바로 하느님의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으로 되어 있다. 하느님에게서 온 마음은 ‘주는 마음’이고, 인간에게서 온 마음은 ‘받는 마음’이다.

주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며, 주체적인 마음이기에 자유롭다. 반면, 받는 마음은 사랑받는 마음이자 더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마음이기에 늘 불안하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좌절하게 되고 상처받기 쉽다. 그런데도 주는 마음보다는 받고 싶은 마음일 때가 더 많은 게 인간인 것 같다.

그러나 주는 마음은 지상의 모든 재화보다 더 큰 만족을 우리에게 준다. 마음을 진정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직접 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선(善)’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며 부족한 한두 가지에 몰두한다. '거의 다 왔어. 이것만, 이것만 더 노력해봐. 그럼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어!'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은 영원히 될 수 없다. 아니, 될 필요 없다. 내 마음속 선함이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를 중심으로 살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더 의식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낯선 사람을 보면 나랑 상관없는 누군가이거나 혹은 경쟁상대가 아니라 나와 아주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의식적으로 나는 저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길을 가르쳐드린 할아버지가, 카페 직원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올라왔다. 나에 대해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오랜 세월 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찾아냈다. 그것은 내 내면의 ‘선’이었다. 나한테는 늘 선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남들과 다른 대단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이기 때문이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p.97, 생활성서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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