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문을 여니 뭔가가 또 잔뜩 있었다. 쌤은 쌤일때 하나는 알고 둘은 절대 모르는 사람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건 줄만 안다. 오늘은 오믈렛이랑 데친 브로콜리, 그리고 애플파이. 며칠 전에는 스무디랑 시리얼, 코코넛 우유 등을 두고 갔다.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하지 않는 나의 약점을 잘 간파했다 생각했다. 그는 웃으겟소리로 이렇게 정성을 다하면 네가 다른 사람 못 만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사실은 알 수 없다. 그가 진지하게 한 말을 내가 꾸역꾸역 웃으겟소리라 여긴 것인지. 그도 그 말에 대한 내 반응을 단순한 웃음이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실로 헛웃음이었다.
그의 애착 성숙도는 나로 하여금 헛웃음을 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는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라 아들러는 말했다. 단순히 성인이 되었다는 것으로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주는 사랑’에는 대표적으로 부모의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궁극적으로는 아이의 독립을 바라주는 마음이 있다. 모든 부모가 ‘주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또 다른 말로는 모든 부모가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쌤에게 그의 어머니에 물었을 때 그는 퍽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실패한 어머니라 했다. 쌤은 어렴풋이 그녀가 ‘주는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본인과 그녀의 분리를 그녀는 원치 않고 있음을 실패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자신에게 의존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되는 역할이나 가치를 부여잡고 있는 본인의 애착 방식의 평행선을 보지 못했다. 그는 어른이 되지 못한 부모의 양육방법의 피해자임에도 혹은 이기에, 같은 방식으로 애정을 구하는 굴레를 답습한 것이다.
어렸을 때 순수했다 생각했던 사랑을 돌아보면 그것이 낭만적 가면을 쓴 채 한 편의 파괴적 비극을 그려냈음을 이제는 안다. 그 시절 나를 아껴주었던 이전의 애인은 나의 손 끝 하나 다칠까 어쩔 줄을 몰라하던 수줍음과 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 무엇과도 싸워줄 것 같은 용맹함을 동시에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것이 나를 애정하는 것이라 혼동할만했다 생각한다. 그도 나중에 자신과 같은 사람 못 만날 것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가 몰랐던 것은 그가 내게 주려던 세계는 내가 원하는 세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손마디가 부스러지더라도 나를 위해서라면 내가 싸우고 싶은 사람인데 자기 멋대로 나의 강인함을 축소해 버렸다,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우리는 어렸고 정말로 어린 사랑을 했다. 쌤도 결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 관계에 임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은우를 만나고 차차 어른이 되어갔다. 마음이 미어져도 사랑하는 사람이 두 발로 이 세상을 탐험해 나아가는 것을 바라주는 것, 그것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 여기게 되었다. 상대가 없어도 우리는 각자 홀로 오롯한 존재가 되길 누구보다 함께 열망해 갔다.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일 수 있었다. 은우와의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소망한 것, 그것의 정반대의 것을 열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쌤은. 그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그 어리숙한 애정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정성을 들이는 것, 이것은 그가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해 사용한 유일한 전략은 아니었다. 그는 가벼운 마음이었을지 몰라도 이미 나로 하여금 본인의 심리치료사를 하게 함으로써 내가 떠나는 행위를 가혹하고 비열한 것으로 만들었음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내게 먹고 싶은 요리가 있냐고 자주 묻곤 했다. 그리운 한식이 없냐며. 그리고 요리를 자주 해다 주었다. 처음 그가 내게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가 나를 그의 집으로 초대하는 줄 알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라는 복잡 미묘한 긴장감과 들뜸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옷맵시를 다듬고 립밤을 빠르게 바르고 그에게 어디로 가면 될까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피곤할 테니까 너네 집 문 앞에 두고 갈게 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제야 나를 긴장시킨 나의 들뜸, 붕 떠올라있던 나의 마음이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나는 혼자 내 방에 있음에도 멋쩍은 민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