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SNS에 4시간 전에 올라온 게시물을 눌러보았다.
깜깜한 차도의 사진과 함께 ‘Good to have figure out how I feel and what I want.’라는 글.
지금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덟 시. 그는 어제저녁 그리고 밤, 새벽 동안 밖에 있었던 것 같다.
나갈 준비를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 공용공간에 리타와 마이클이 주인 부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 잤어?” 나를 발견한 리타가 말했다.
“응. 다들 일찍 일어났네. 근데 혹시 쌤 못 봤어?” 리타와 마이클이 동시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에 있는 거 아니었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한 번도 방에 안 들어온 거 같아.”
“진짜? 전화해 봤어?”
“아니. 그러게 해봐야겠네.” 나는 전화를 할까 잠시 고민하다 대신 어디냐는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야자나무 공원 갈 거지? 그럼 어서 나가야 해. 우리 4시 비행기잖아.”
“그렇네. 빨리 준비할게.”
체크아웃을 해야 할 때까지도 답장이 없어 짐을 숙소에 맡겨두고 이동하는 장소를 알려두었다.
리타와 마이클과 야자나무 공원에 도착했다.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이 드높은 야자나무들 사이의 길을 따라 들어갔다. 우리 외의 방문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무에 둘러싸여 어딘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은밀한 이야기를 해도 비밀을 지켜줄 것 같은 그런 안전함.
“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겠지?” 리타가 말했다
“쌤 너무 불안정해 보이지 않아?” 마이클이 물었다.
“좀 그렇긴 해. 저번에 나랑 술 마시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하고. 근데 알지, 자기 속내는 조금도 터놓지 않는 거. 남한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되는 거, 남을 믿는 거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니까.” 리타가 답했다.
“네가 어떤 답을 내려야 해.” 마이클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응? 어떤 답?”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절도 하나의 답이야.” 마이클은 내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난 답을 했어. 어떤 관계에 임할 여유가 없다고. 아니, 사실은 그가 어떤 답을 요구한 적이 없어.”
“그건 진짜 이기적인 거야.” 마이클은 계속 말했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 속에 걸었다. 공원의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가니 연못이 나왔다. 연못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너 눈엔 쌤이 괜찮아 보여?” 마이클이 물었다.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큰 오만인 거 같았다. 그렇다고 나 때문이 아니라 하기엔 마이클 말처럼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공항으로 가기 전에 기념품을 사러 가지 않겠냐는 리타의 제안에 셋은 유글레나몰을 들렸다. 아직도 답이 없던 쌤에게 유글레나몰로 오라고 연락을 남겨두었다. 시간은 한시를 향하고 있었다. 눈앞으로 기념품 가게가 줄을 섰다. 흥미로워 보이는 몇 군데를 들어가서 시식도 하고 이것저것 주어 담고 있을 때 쌤에게 연락이 왔다. 역에 가까운 어느 골목 앞에 있다고. 나는 리타와 마이클에게 쌤을 데리러 오겠다 말하고 가게에서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나가보니 도로변에 우두커니 서있는 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불렀다. 그가 내쪽을 바라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제 혼자 후카를 피러 갔다 왔어.”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마치 대답을 하듯 말했다. 오히려 나는 물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구나.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기념품 구경할래?” 그로부터 돌아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시 그를 향해 돌아보니,
“누군가를 만났어.” 라며 다시 묻지 않은 질문에 답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국내선이니까 공항에 한 시간 전에만 도착하면 되나? 근데 지금 벌써 두시가 지났어.”
그는 꿈쩍도 안한채 자신의 말을 계속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You don’t owe me any explanation.”
“아니 말하고 싶어. 언제까지 더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너랑 같은 방에 못 있겠더라. 그래서 후카바에 갔는데 너에게 내가 원하는걸 언젠가는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예전에 몇 번 만난 적 있는 사람한테 연락했어. 바로 답장이 오더라, 자기 집으로 오라고.”
“누군데?”
“예전에 언어교환 어플로 만난 사람이야.” 어제 그 많은 사람을 어디서 만나냐는 나의 질문에 답한 그 어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응, 그런데?”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술 마시고… 하려 하는데.” 나는 잠자코 들었다.
“아무 반응이 안 오더라.”
“그래?” 나는 최대한 덤덤히 답했다.
“We were butt naked. But nothing.” 약간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농담 삼아,
“원래는 반응이 잘 오고?”라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농담에 실소를 터트렸다.
“당연하지.”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니.”
그제야 그는 발을 뗐다. 나는 앞서서 리타, 마이클과 있었던 가게로 돌아갔다. 둘은 그곳에 없었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복잡하니까 공항에서 만나자는 메시지가 있었다.
“나 아직 못 골랐는데. 한 군데만 더 보고 공항으로 가도 될까? 시간이 많이 촉박하려나.” 나는 이곳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더 잘 알고 있을 쌤에게 확인했다.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따를 생각이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못 사게 되더라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래.” 그는 잠자코 나를 따라다녔다.
결국 세시가 되기 좀 전이돼서야 쌤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우리가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모노레일 역으로 전력을 다해 달렸다. 겨우 모노레일에 올라탔지만 공항역에 도착하면 세시가 넘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내선이니까 세시 좀 넘어도 탈 수 있겠지?” 나는 그에게 재차 확인했다.
그는 별 다른 대답 없이 내 짐을 대신 들고뛰겠다고만 했다. 공항역에 내려서 카운터로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세시 반이 조금 지나버린 바람에 체크인이 불가해졌다.
“너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기념품을 사는데 서두르라고 말을 하지 않은 거야?” 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하며 쌤에게 물었다.
“너에게 교훈을 가르쳐주고 싶었어.”
교훈? 나에게 교훈을? 나는 그의 말에 심각한 피로를 느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내 목소리에 거북함을 그도 느꼈는지 그의 동그란 두 눈이 흔들렸다.
비행기표를 새로 구매하고 침묵 속에서 대기했다. 도쿄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말을 몇 번이 고는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