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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27. 2024

# 30. 모로코 '인샬라', 형제의 나라 터키로

꿈에서 깨어나 이제 한국과 가까워지는 여정을 시작하다.

15th 국가: 모로코

19th 여정: 모로코 도시들 (7.7-7.10)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 테투안 → 쉐프샤우엔 → 페즈 쉐프샤우엔 → 마라케시 → 터키 안탈리아

이제 한국과 가까워지는 여정을 시작했다. 돌아갈 곳이 있을 때, 여행은 의미를 지닌다.
탕헤르 → 테투안 → 쉐프샤우엔→ 페즈→ 마라케시


사십춘기 방랑기 D+119~120(2017.7.7~8) 모로코 in 쉐프샤우엔 → 페즈 → 마라케시


  어제의 긴장되던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터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마라케시로 이동해야했다. 급히 터키로 가야했다. 그래야 이미 예약해놓은 아제르바이잔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터키에서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쉐프샤우엔’에서 ‘페즈’로 이동한 후, ‘페즈’에서 다시 ‘마라케시’로 이동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아침 11시에 탄 버스는 오후 3시에 ‘페즈’에 도착했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마라케시행 버스를 8시에 탑승했다. 마라케시는 정말 멀었고, 며칠 동안의 긴장이 한 번에 풀어져서인가. 밤새 식은땀이 나면서, 제법 앓았다. 장시간 이동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여정은 너무도 힘들었다.

모로코의 버스, 원래는 그 번잡스러움을 즐기는 편이지만, 페즈에서 마라케시로 이동하는 여정은 복통과 함께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복통과 멀미, 속이 부대낌 가운데에서 아침 6시가 되어서야 마라케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라케시의 숙소에 도착한 뒤로, 설사병이 심해져서, 계속 누워서 앓았다. 숙소의 주인도 친절하고, 함께 머무르는 사람들도 친절해서, 힘들어하는 내 상태를 물어봐주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약들을 내게 주어서 먹게 했다. 고맙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마라케시에서는 온 종일 숙소 안에서만 있었다. 화장실을 계속 왕래하다가, 글을 쓰면서, 지난 일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마라케시 숙소에서 컴퓨터를 하던 중, 꼬마 거북이가 옆을 지나갔다. 반갑고, 신기해서 한참을 놀았다.


  나는 그녀의 연락처를 모른다. 아는 것은 페이스북 메신저이지만, 정작 그녀는 페이스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가 페이스북을 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연락이 저절로 끊기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내가 이 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나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표했으나, 그 호감에 대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영역이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여부이지, 그녀의 마음이 아니다. 내 마음이 상대에게 그만큼 갔다고, 상대의 마음이 그만큼 내게 와야 된다는 법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사람의 여정이 평탄하기를 늘 기원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일 뿐이다.      




사십춘기 방랑기 D+121일(2017.7.9.) 모로코 in 마라케시 공항


 확실히 물갈이를 하는 듯하다. 긴밤 내내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했다. 이런 내가 불편했을 수도 있는데, 같은 숙소 옆자리에서 머물었던 친구는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그 친구는 공교롭게 터키출신이었다. 그의 이름  "이므랏", 그에게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자기는 한국을 형제나라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할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에게 너무 슬픈 흔적이었던 전쟁이었지만, 우리는 이 전쟁으로 형제의 나라를 얻은 것도 싶다. 그리고 그 형제의 나라에서 온 친구로부터 나는 보살핌을 받았다.

이므랏은 바로 내 옆의 침대에서 머물렀다. 밤새 앓았던 내게 말 걸고, 보살펴 주었다.


 아침이 되어,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했고,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보통은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와는 안되는 영어를 통해서라도 소통하고 싶었다. 그는 내 나이에 놀랐다. 31살이었던 그는, 내가 40살이라고 하니, 말이 안된다고 놀란다. 네가 나보다 어리다는 게 더 놀랍다. 그에게 너희 나라 기준으로는 39살이라고 하니, 그래도 너는 말도 안 되게 젊어 보인다고 호들갑이다. 한국에서는 노안으로 유명했는데, 외국에서 살아야 하나


 그는 내 직업을 궁금해했고, 선생을 했었다는 내 이야기에 그는 돌아가서 계속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의 말을 흘려 들을 수 없었다. 지쳤다고 하니, 남은 기간 회복될 거라고 말하며.. "인샬라"라고 이야기 한다. 인샬라... 신을 뜻대로 될 것이다. 인샬라.. 인샬라  

이므랏이 선물이라고, 화장지를 건냈다. 이 선물에 나는 잔뜩 신이 났다.


 터키로 출발해서 며칠 머무르냐는 질문에 하루... 엄밀히 말하면 12시간 머무른다고 했더니, 왜 터키에 가느냐고 의아해한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5일 전에 터키에 가는 거였는데, 비행기를 안탔다고 하다보니, 그가 모로코에서 중요한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잠잠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이 친구가 훅 들어와서 졸지에 연애상담이 시작되었다. 뭐, 대부분의 결론이 너를 위해 내가 기도하겠다. 알라께서 도와줄 것이다였는데...ㅋㅋㅋ 나는 기독교 신자란 말이다. ㅋㅋㅋㅋ 이친구는 결혼을 하여,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데, 꼭 다음 여행에는 자기와 자기 가족을 만나러 오라고 간청해서.. 서로 그러기로 약속했다. 대신 왠만하면, 너도 가정을 이룬 상태에서 왔으면 좋겠다는 팩트 폭격을 시전하였다. 인샬라... 인샬라...  

 

심장이 멋진 남자 둘의 모습이다. 심장이 멋진 모습을 알아 주는 여인을 만나라고 그는 내게 이야기했다


 그는 업무차 마라케시에 왔기 때문에 , 아침 9시에 출근을 해야 했다. 일을 하고 돌아보면,  내가 공항으로 이동해서 없을 거라고 하니, 겨우 하룻밤을 같이 지냈을 뿐인데, 너무도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선물을 준다. 너의 뱃속 상태를 보면, 이게 꼭 필요할 거라고. 자신이 사용하던 두루말이 화장지를 내게 준다. 이런 투박한 선물이 좋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니, 그도 신이 났다. 사진을 찍어, 자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네가 내년에 오면.. 터키에서 만나게 해주겠다고. 이놈의 인기란...


 작별을 앞두고, 그에게 물었다. 나는 멋지지도 않고, 영어도 못해서 대화하기 힘들었을텐데, 왜 나하고 계속 이야기를 한거냐고...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내 남은 여행의 지표가 되었다. 너는 심장(하트)이 멋진 사람이다. 나는 느꼈다. 그는 이야기를 하며, 주먹으로 자기 명치와 내 명치를  번갈아 두들겼다. 심장이 멋진 사람... 그래, 그렇게 되어보자.


 그와 작별을 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공항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2시간 정도 되는 거리, 천천히 천천히 걸어갈 생각이다. 마라케시에서는 그냥 숙소에 누워있을 뿐이었지만, 참으로 좋았다. 모로코에서 보낸 11일은 지난 40년 간, 모든 나의 여행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떨렸으며, 무서웠고, 기뻤던 기간이었다. 2017년 6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바로 이 때, 모로코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굳바이 모로코... 인샬라



사십춘기 방랑기 D+122일 (2017.7.10) 터키 in 안탈리아


 모로코에서 터키 안탈리아로 넘어오는 길은 험난했다. 모로코에서 브리쉘, 브리쉘에서 안탈랴로 2번 환승을 해야 했다. 음식을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래도 공항라운지에서의 휴식을 믿었건만, 여행 후 처음으로 모든 라운지를 이용할 수 없었고, 2번 탑승한 비행기에서는 어떠한 기대식도 제공받지 못했다. 또한 브뤼셀 공항에서는 환승이 아니라 출국후 재 체크인하는 형태여서, 잠을 거의 못자고 체크인박스 앞에서 기다렸어야 했다. 컨디션은 사정없이 엉망이 되었다.

한국과 가까워지는 방향으로의 여정이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뭔가 설렘이 있다.

  거기에다가 터키의 안탈리아 공항은 출국부스를 정말 개떡같은 구조로 만들어 나서, 짐을 찾기 위해 출국심사를 통과하는데만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일이 안될 때는 겹쳐서 온다는 것을 실감했다. 짜증낼 힘도 없어서, 그냥그냥 체념하며 기다렸다. 터키에서는 다음 비행기 탑승 전까지 12시간 정도만 머무르면 되기 때문에, 공항에 짐을 맡겨 두고 안탈랴를 관광하다가 야간에 공항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아침 아제르바이젠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내 컨티션은 엉망이었고, 처음으로 공항 노숙을 못 할 만큼, 몸이 힘들었다. 더군다나 안탈리아에는 짐보관소도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온 후, 보이는 아무 숙소에나 들어왔다. 원래 예정이었다면, 5일 정도 터키를 여행했을 것이지만, 변수로 인해 터기는 12시간만 거쳐가는 경유지가 된 셈이다. 따라서 터키는 여행한 국가의 목록에서는 제외함이 옳겠다. 나중에 다시 오자. 3성급 호텔, 제법 좋은 숙소였건만, 그대로 쓰러져서 잠만 잤다.  이제부터 나의 여행은 한국과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여정이 진행된다. 한국과 가까워지는 여정의 시작.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 반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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