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Apr 02. 2024

창세기를 이어서 읽고 있습니다.

진짜 신앙의 모범이 필요하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셋. 창세기 11장 10절~26절


긴분량이어서 옮겨적기는 어렵고, 요약하자면, 대략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부터 아브람까지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살을 살았는지의 서술들이 나온다.


옛날 사람들 오래 살았다. 홍수 이후로 이들의 생존 기간이 급격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오늘날과 비교해서 확실히 오래 산 건 분명하다. 노아의 장자 셈이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이후 5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고 한다.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무의미해 보이는 서술들에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들었던 생각... 셈에서부터 아브람에 이르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계산해보니, 대략 400년이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노아의 홍수를 직접 경험했던 셈이 아직 살아있었다는 말이 된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아브람이 분명 셈을 만나서 직접 홍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셈의 직접 경험 이야기는 아브람에게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자라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혹시 이러한 신앙의 선배들을 직접 만 경험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여러 의심들과 음모론이 가득찬 세상에서,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처럼 확신있고, 분명한 것이 있을까. 와보라. 의심이 난다면, 의심에 지지 말고, 진짜 신앙의 모범을 직접 찾아서 만나고, 진실을 대면하라 .



넷. 창세기 12장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를 축복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창세기 12장 초입에는 선택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나온다. 이 구절은 그 중의 일부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흔히, 이 말씀은 선택된 자를 향한 특권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며, 순간 한 단어가 떠올랐다. 헬조선!


오늘날 우리나라의 부조리한 현실을 지칭하며 사용하는 단어이다. 지옥과 같은 우리나라라는 의미.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조롱인지, 치기어린 엄살인지, 비판적 현실인식인지는 구분하지 않고자 한다. 다만, 오늘날 우리나라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 보고자 한다. 왜 이 땅이 이러한 문제투성이가 되었을까. 창세기 12장 3절은 아브람 개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이를 부르심을 받은자 전체로 확대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부르심을 받은 자를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여 표현해보고자 한다. 이것이 도약이고 왜곡일 수 있음은 인정한다.


말씀에 따르면, 부름심을 받은 자를 사람들이 축복하면 축복받고, 그를 저주하면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챤은 많은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오해이기도하고, 단순한 편견이나 놀이 같은 양상을 띠기도 하기 때문에 크리스챤에 대한 비난은 과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가 되었는 크리스챤을 향한 조롱과 저주는 이 땅을 저주에 빠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이지, 저주의 통로가 되어선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를 저주하면 ,너희가 저주받는다고 사람들에게 항변할 것인가? 그것은 지혜롭지 않고, 설득력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에게 축복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수 밖에 없다. 성경에는 답이 나와 있다. 너희가 하는 착한 행실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 세상을 축복하는 크리스챤의 방법은 우리가 선하고 , 올바른 행동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 그들이 우리를 축복하기때문에 그들이 축복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제발 선하게 살자. 올바르게 살자. 진짜 신앙의 모범이 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