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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r 31. 2024

창세기부터 시작합니다.

-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 않는 떠돌이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 어떨까 싶습니다.



하나. 창세기 3장 12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남자가 가장 부끄러워지는 시간.. 남자 최초의 찌질해지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인류 최초의 사랑과 고백도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세상 모든 존재의 이름을 구분하여 지을만큼 총명했던 아담은, 하와에게 너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는 고백을 한다. 지금에서야 그 느낌이 잘 다가오지 않지만, 이는 "너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 이 정도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매우 지적이었던 아담은 사랑을 아는 로맨티스트였고, 이를 기꺼이 고백할 수 있는 용기도 지니고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 아담은 범죄 후 추궁의 시간에 가장 찌질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 무엇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모습. 당당하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두번이나 보인다. 내 범죄는 여자의 탓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내게 준 것은 당신입니다. 아 찌질하다. 남자는 죄를 지으면 찌질해진다. 찌질해지기 않기 위해서라도 범죄하지 말자. 내가 아내탓을 하고 있다면, 무언가 범죄했기 때문이리라.   






둘. 창세기 11장 1절~9절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대략적인 내용은 홍수 이후 온 땅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인류가 바벨탑을 쌓기로 결의하게 되는데, 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 공사를 실패하게 하셨다는 내용이다 .


언어학의 유명한 가설 중의 하나가 있다. 사피어-워프 가설. 그가 사용하는 언어 체계가 그의 사고에 영향을 끼찬다는 것으로, 이를 토대로 '컨택트'라는 참신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도모했던 바벨탑 사건에서 하나님은 직접 바벨탑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는 방법을 택하셨다. 처음에는 이를 사람들이 언어가 달라졌기 때문에 함께 뜻을 모아서 일을 진행하는 것을 어렵게 하신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성경을 읽으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체계가 그의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면, 동일한 언어체계를 사용하는 집단의 사람들은 유사하게 사고하게 되어,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현저하게 약해지지 않을까. 즉, 바벨탑을 쌓기로 한 어리석은 행동에 대하여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집단의 일방향적인  사고 방향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의 출현이 동일한 언어체계를 사용하는 집단에서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못 보는 우둔함을 서로를 통해 인식하고, 수정하여 무지와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의 언어체계를 다르게 하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언어의 혼잡은 저주와 형벌이 아니라, 이해의 지평의 넒히는 은총의 결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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